폐업 20년, 그 놀이공원
박준혁 씨(가명, 31세)는 폐허 탐방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였다. 그가 3년째 벼르던 장소가 하나 있었다. 수도권 외곽, 20년 전 문을 닫은 뒤로 한 번도 정식 철거되지 않은 놀이공원이었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그곳은 이제 잡초와 녹슨 철제 구조물만 남아 있었다. 놀이기구 대부분은 부식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서 있는 대관람차만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박 씨는 동료 이수아(가명, 29세), 강태민(가명, 33세), 정다은(가명, 27세)과 함께 자정 무렵 그곳에 도착했다. 전력은 폐업 직후 끊겼다고 관리사무소 옛 기록에 남아 있었다. 발전기도, 배터리도 없는 완전한 정지 상태. 그것이 이곳을 촬영지로 고른 이유이기도 했다.
“설비가 전혀 안 돌아가니까, 오히려 안전할 거야.” 박 씨는 카메라를 점검하며 말했다.
도착하자마자 느껴진 위화감
정문은 굵은 체인으로 잠겨 있었다. 이미 오래전 무너진 담장 틈으로만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네 사람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상하게도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한여름 밤인데도 공기는 서늘했고,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정다은 씨가 먼저 그 정적을 알아챘다.
“여기… 너무 조용한데요. 벌레 소리도 안 들려요.”
박 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카메라를 켰다. 대관람차는 입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놀이공원 정중앙에 서 있었다. 스물일곱 개의 탑승칸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늘어서 있었고, 페인트는 대부분 벗겨졌지만 골조는 놀라울 만큼 멀쩡했다.
강태민 씨가 카메라 각도를 잡으려 뒤로 물러서다 멈칫했다.
“어? 아까 저기 있던 칸, 위치가 바뀐 것 같은데.”
아무도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어두워서 착각했을 거라 생각했다.
한 칸씩, 정확히 한 칸씩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하지만 대관람차 아래에서 한 시간 정도 촬영을 진행하던 중, 이수아 씨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거 봐.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이랑 지금 이거 좀 비교해봐.”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확실했다. 지면과 가장 가까운 탑승칸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정확히 한 칸만큼, 시계 방향으로.
“바람 때문 아니야?” 강 씨가 말했다.
“바람이 한 점도 안 부는데?”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대관람차는 전력이 끊긴 지 20년이 넘은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었다. 사람 손으로 밀어서 돌아갈 무게가 아니었다.
그들은 애써 무시하고 촬영을 계속했다. 30분쯤 지나 다시 확인했을 때, 탑승칸은 또 한 칸 돌아가 있었다.
끼이이익—
낮고 무거운 쇳소리가 대관람차 상단에서 짧게 울렸다. 마치 거대한 축이 살짝 돌아가다 멈추는 소리처럼.
네 사람의 손전등이 일제히 위를 향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 우뚝 선 철제 원이 있을 뿐이었다.
유리창에 서린 입김
정다은 씨가 가장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 방금 한 칸 돌아간, 지면에서 가장 가까운 탑승칸이었다.
“저 창문… 뭔가 이상해요.”
낡고 뿌연 유리창 안쪽에, 둥글게 서린 흔적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유리에 입김을 불어넣은 것처럼. 20년 넘게 밀폐돼 있었을 그 좁은 공간 안쪽에.
박 씨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전등을 비췄다. 입김 자국은 하나가 아니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흔적 여러 개가, 유리창 곳곳에 겹쳐 서려 있었다.
“이거… 방금 생긴 것 같은데.” 강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게, 마치 먼 곳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멜로디였다. 오르골처럼 단순하고 경쾌한, 옛날 놀이공원에서나 나올 법한 배경음악.
네 사람은 얼어붙었다. 전력이 끊긴 지 20년이 넘은 곳에서, 스피커도 발전기도 없는 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리는 관람차 상단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아주 희미하게, 낡은 테이프가 늘어진 것처럼 음정이 어긋난 채로.
멈춰버린 음악, 그리고 그림자
“그만 나가자.” 이수아 씨가 먼저 말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장비를 챙기며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정리하던 박 씨가, 무심코 조금 전 그 탑승칸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얘들아.”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세 사람이 동시에 그가 보는 방향을 따라갔다.
유리창 안쪽. 입김 서린 그 흐릿한 표면 뒤로, 그림자가 비쳤다.
사람의 형태였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더.
그들 네 명보다, 정확히 하나 더 많은 그림자가 그 좁은 탑승칸 안에 서 있었다.
그림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유리창 안쪽에서, 밖을 내다보듯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배경음악이 뚝 끊겼다.
그리고 다시, 끼이이익—
대관람차가 한 칸 더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아주 가까이에서.
네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담장 틈을 향해 뛰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숨소리와 발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
박 씨는 그날 촬영한 영상을 지금도 편집하지 못하고 있다.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다.
다만 한 가지, 도저히 떨칠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담장 틈을 빠져나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봤을 때 대관람차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그런데 그중 딱 한 칸의 유리창에만, 입김이 서려 있었다.
박 씨는 그 뒤로 폐허 탐방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가끔, 밤에 놀이공원이 나오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대관람차는 항상 조금씩 돌아가고 있고, 그는 언제나 탑승칸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자신을 포함해 몇 명인지는, 세어본 적이 없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놀이공원이나 장소, 인물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