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의 조용한 밤
이도현 씨(가명, 29세)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서울 변두리의 5평짜리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마감이 몰릴 때는 새벽까지 작업하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다. 불규칙한 생활이었지만, 도현 씨는 그게 프리랜서의 숙명이라 여기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시작된 건 폭염이 한풀 꺾이기 시작한 8월 초의 어느 밤이었다. 도현 씨는 그날도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작업을 마치고 불을 끈 채 침대에 누웠다. 창밖에서는 매미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고, 에어컨 대신 틀어놓은 선풍기가 낮게 돌아가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잠은 금방 들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밤이었다.
눈은 떠지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새벽 3시 12분, 도현 씨는 눈을 떴다.
몸이 이상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숨은 쉬어지는데, 마치 누군가 가슴 위에 올라앉은 것처럼 답답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가위눌림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도 몇 번 겪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천장 쪽에서, 시야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정확히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도현 씨는 눈동자만 겨우 움직여 그쪽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초점이 잡히기 전에, 몸이 스르르 풀렸다. 시계를 보니 3시 15분이었다. 3분. 그게 전부였다.
다음 날 도현 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야근으로 인한 피로 때문이라 생각했다.
매일 밤 조금씩 가까워지는 얼굴
문제는 그다음 날 밤에도, 또 그다음 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새벽 3시 12분. 도현 씨는 어김없이 눈을 떴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장 근처의 그 형체는, 매일 아주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검은 얼룩 같았다. 사흘째 되던 밤엔 사람의 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얼굴 없는 뒤통수처럼 보이던 것이, 닷새째 되던 밤엔 천천히 이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던 밤, 도현 씨는 처음으로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날 밤은 유독 방 안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선풍기 바람이 닿는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고, 마치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침대 주변의 공기만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보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머리카락이 얼굴 반쪽을 덮고 있었고, 남은 반쪽의 눈은 크게 뜬 채 미동도 없이 도현 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리는 처음보다 확실히 가까워져 있었다. 천장에 붙어 있던 것이, 이제는 침대 위 허공에 떠 있었다.
알아듣게 되는 속삭임
몸이 마비된 채로 눈만 뜨고 있는 그 몇 분 동안, 도현 씨는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라디오 주파수가 잘 안 맞을 때 나는 잡음 같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저주파의 웅얼거림. 그러나 며칠이 지날수록 그 소리는 점점 사람의 말소리에 가까워졌다.
그 웅얼거림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도 조금씩 무거워졌다. 처음엔 손바닥 하나가 얹힌 듯했던 압박감이, 이제는 누군가 온몸으로 올라앉은 것처럼 묵직하게 변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가 조여드는 듯한 통증이 함께 밀려왔고, 귓가에는 축축한 숨결이 스치는 감촉까지 느껴졌다.
열흘째 되던 밤, 도현 씨는 그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도현아... 도현아..."
분명 목소리였다. 낮고, 축축하고,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도현 씨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옆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도현 씨는 잠들기가 두려워졌다. 불을 켜놓고 자보기도 하고, 며칠은 본가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존재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본가의 낯선 방에서도, 새벽 3시 12분이 되면 어김없이 몸이 굳었고 그 얼굴은 거기 있었다.
마비가 풀리던 그 순간
보름째 되던 밤, 도현 씨는 마침내 결심했다. 이번엔 눈을 감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기로.
새벽 3시 12분. 몸이 굳었다. 그 형체는 이미 침대 바로 위,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떠 있었다. 얼굴을 가리던 머리카락이 스르르 걷혔다.
도현 씨는 그 얼굴을 봤다.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 낯익은 이목구비였다. 마치 거울을 오래 들여다볼 때처럼.
그 순간,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3분 만에 마비가 풀린 것이다. 도현 씨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방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와 똑같은, 텅 빈 원룸이었다.
그런데 마비가 완전히 풀리는 그 마지막 순간, 도현 씨는 분명히 느꼈다. 무언가 손끝이 자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촉감을.
아직도 그 시간이 되면
도현 씨는 그 뒤로 병원 두 곳을 다녀왔다. 수면 클리닉에서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스트레스로 인한 반복적 수면 마비라는 소견을 받았다. 약도 처방받았고, 생활 리듬도 규칙적으로 바꾸려 애썼다.
증상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아주 가끔, 유난히 피곤한 날에는 새벽 3시 12분에 눈이 떠진다.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천장 쪽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혹시 그것이 아직 거기 있는지, 도현 씨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안다. 언젠가 다시 눈을 뜨는 밤이 오면, 그 얼굴은 지난번보다 조금 더 가까이 와 있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