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이 어긋난 밤
한지훈 씨(가명, 34세)는 지방 출장 중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구하러 나섰다. 예약해둔 호텔은 이미 만실이었다. 발품을 팔다 겨우 찾은 곳은 터미널 근처 골목의 오래된 여관, 은하여관이었다.
카운터에는 중년의 남자 직원이 혼자 앉아 있었다. 빈 방이 있는지 묻는 한 씨에게 직원은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이상하리만치 반색했다.
"마침 딱 좋은 방이 하나 있어요. 원래 가격보다 넓은 방으로 드릴게요."
3층 끝, 창고 옆방
안내받은 방은 3층 복도 맨 끝이었다. 옆으로는 청소 도구가 쌓인 창고가 있었고, 복도 조명 하나는 깜빡거리며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방은 확실히 넓었다. 하지만 어딘가 오래 묵혀둔 듯한 냄새가 났다. 벽지 이음새마다 희미하게 얼룩이 번져 있었고, 창문은 굳게 닫힌 채 두꺼운 커튼이 늘어져 있었다.
체크인을 하며 무심코 숙박 리뷰 앱을 켰다. 이 여관의 후기는 대체로 평범했다. 그런데 유독 몇몇 글이 눈에 밟혔다.
"방은 넓고 좋았는데 이상하게 잠을 잘 못 잤어요. 몸이 계속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새벽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깼는데,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겠죠."
"직원분이 친절하게 넓은 방으로 바꿔주셨어요. 근데 다시는 그 방엔 안 묵을 것 같아요."
날짜도 작성자도 전부 달랐다. 그런데 하나같이 방 번호는 적지 않은 채, 비슷한 말만 흐릿하게 남겨 놓았다.
가슴 위에 앉은 무게
새벽 1시가 넘어 한 씨는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정확히는, 눈꺼풀만 겨우 떠졌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가 점점 무거워졌다.
천장이 보였다. 그 위로 무언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사람의 형체 같았다.
숨이 막혔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귓가에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숨소리가 아니었다.
몇 분이었는지, 몇 초였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창밖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
다음 날 밤, 한 씨는 일부러 불을 켜둔 채 잠들려 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자 또다시 몸이 굳어버렸다.
이번에는 창고 쪽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끌고 가는 듯한, 둔탁하고 느린 마찰음.
드르륵... 드르륵...
소리는 점점 방 안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마치 벽을 타고 넘어오는 것처럼.
가위눌림 속에서 한 씨는 눈동자만 겨우 굴려 방문 쪽을 봤다.
문 손잡이가, 아주 조금씩, 스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는 한계까지 돌아간 채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졌다.
체크아웃, 직원의 눈빛
날이 밝자마자 한 씨는 짐을 챙겨 나왔다. 카운터의 직원은 그의 얼굴을 보더니 순간 멈칫했다.
"괜찮으셨어요, 그 방...?"
말끝을 흐리는 직원의 표정에서, 한 씨는 그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더 캐물을 새도 없이 직원은 시선을 피하며 다음 손님을 응대했다.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것
집으로 돌아온 뒤, 한 씨는 그 리뷰 앱을 다시 열어봤다.
그리고 새로운 후기 하나를 발견했다. 이틀 전, 그러니까 한 씨가 묵기 바로 전날 같은 방에 묵었던 손님이 남긴 글이었다.
"친절하게 넓은 방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새벽마다 가위에 눌려서...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한 씨는 그제야 깨달았다. 예약이 밀렸다는 그날 밤, 자신이 그 방으로 안내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지금도 그 여관은 영업 중이다. 그리고 카운터 직원은, 오늘 밤에도 늦게 도착한 누군가에게 그 방을 권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 딱 좋은 방이 있어요."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