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들인 낯선 물건
김서윤 씨(가명, 34세)는 올봄 원룸에서 투룸으로 이사하며 중고 거래 앱에서 오래된 오동나무 함을 하나 샀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에, 겉면에는 옅게 바랜 나비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앞쪽에는 녹슨 놋쇠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장식용으로 예쁘실 것 같아서요"라는 판매 글과 달리, 물건을 받으러 갔을 때 판매자는 함을 건네주며 이상한 말을 남겼다.
"저는... 직접 열어보진 않으실 걸 추천드려요. 저희 집에서도 계속 이상한 일이 있었거든요. 그냥 두시기만 해도 괜찮으실 거예요."
서윤 씨는 웃어넘겼다. 중고 거래에서 흔한 과장 섞인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함은 그저 예쁜 골동품처럼 보였고, 서윤 씨는 그것을 거실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자물쇠를 여는 순간
며칠 뒤, 서윤 씨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낡은 자물쇠는 힘을 주자 맥없이 풀렸다. 함 안에는 누렇게 바랜 한지 조각과, 실로 묶인 머리카락 한 뭉치, 그리고 손으로 눌러쓴 듯한 글씨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알아볼 수 없는 이름 하나와 날짜만이 적혀 있었다.
그날 밤부터 집 안 공기가 달라졌다. 분명 보일러를 틀어놓았는데도 거실 바닥에서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은은하게, 오래된 흙과 향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새벽 2시 47분
그 뒤로 서윤 씨는 매일 같은 시각에 잠에서 깼다. 새벽 2시 47분. 알람도, 이유도 없었다. 눈을 뜨면 거실 쪽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착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시각에 같은 소리가 반복되자 서윤 씨는 결국 거실로 나가 확인했다. 분명 다시 잠가두었던 자물쇠가, 매번 살짝 열려 있었다.
그 무렵부터 이상한 벌레들이 함 주변에만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검은 벌레가 선반 위에 죽어 있거나, 함 틈새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서윤 씨는 여러 번 목격했다.
버려도 돌아오는 것
견디다 못한 서윤 씨는 함을 갖다 버리기로 했다. 새벽에 몰래 집 근처 재활용 수거장에 내다 놓았다. 하지만 다음 날 퇴근하고 돌아온 거실 선반 위에는, 분명 버렸던 그 함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서윤 씨는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알지 못했다. 두 번째로는 함을 종량제 봉투에 넣어 먼 동네까지 나가 버리고 왔다. 그런데도 사흘 뒤, 함은 똑같은 자리에 다시 놓여 있었다.
친한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동료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려다 낯빛이 굳었다. "그거... 혹시 뚜껑에 나비 문양 있었어? 우리 이모가 그런 함 얘기한 적 있는데,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했었거든."
그날 밤, 함이 스스로 열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새벽 2시 47분, 서윤 씨는 여느 때처럼 눈을 떴다.
이번에는 소리가 달랐다.
딸깍, 소리에 이어 무언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거실로 나가는 대신, 서윤 씨는 방문 틈으로 거실을 훔쳐보았다.
선반 위, 함의 뚜껑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가느다란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머리카락이었다.
한 가닥, 두 가닥,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이 함 밖으로 흘러넘치듯 쏟아지고 있었다.
서윤 씨는 숨을 멈췄다.
그 순간, 머리카락 더미 사이로 아주 작은 눈동자 하나가 서윤 씨 쪽을 향해 열렸다.
지금도 그 선반 위에
서윤 씨는 그날 이후 함을 버리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상담소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만, "그 물건은 주인을 정해서 따라간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지금도 함은 서윤 씨의 거실 선반 위에 놓여 있다. 서윤 씨는 매일 새벽 2시 47분이면 눈을 뜬다. 그리고 딸깍, 소리가 들리기 전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가끔은 소리가 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 날 아침이면, 서윤 씨는 반드시 확인한다. 자물쇠가 잠겨 있는지. 그리고 함 안에 머리카락이 얼마나 늘어나 있는지.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