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셋째 날, 벽 틈에서 나온 것
박도윤 씨(가명, 34세)는 작은 인테리어 시공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번에 맡은 현장은 예전에 중학교였다가 폐교된 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3층짜리 건물을 상가로 개조하는 공사였다. 낡은 사물함과 칠판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교실들을 뜯어내는 작업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오후, 도윤 씨는 복도 끝 사물함을 뜯어내다가 벽과 사물함 사이 좁은 틈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손을 넣어 꺼내 보니,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지우개인형 하나였다.
손바닥만 한 지우개인형
손바닥만 한 크기에, 색이 바랜 리본이 목 부분에 묶여 있었다. 표면 전체에 작고 검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전부 바늘로 찌른 자국이었다. 도윤 씨는 무심코 개수를 세어 보았다. 열일곱 개.
뒤집어 보니 등 쪽에는 볼펜으로 눌러쓴 글씨가 있었다. 오랜 세월에 잉크가 거의 지워져, 두세 글자짜리 이름 같다는 것 말고는 알아볼 수 없었다.
함께 나온 공책 조각
인형과 함께 사물함 뒤 틈에서 누렇게 바랜 공책 조각도 딸려 나왔다. 손 글씨로 빼곡히 적힌 그 종이에는 낯선 규칙이 적혀 있었다.
"이 인형에 바늘로 한 번 찌를 때마다 소원 하나."
"OO이 쪽지시험 망하게 해주세요."
"OO이랑 짝 떨어지게 해주세요."
같은 이름 하나가 유독 자주 등장했다. 누군가를 겨냥해 만들어진, 예전 학생들 사이의 '저주 놀이'였던 모양이다. 도윤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인형과 공책 조각을 작업실 한쪽 선반에 올려두었다.
별생각 없이 놔둔 뒤부터
공사는 계속됐다. 며칠 뒤, 도윤 씨는 손목 안쪽에 작고 붉은 자국 하나를 발견했다. 바늘로 살짝 찌른 듯한, 멍인지 상처인지 애매한 자국이었다. 공사장에서 흔히 생기는 상처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자국이 하나 더 생겨 있었다. 이번엔 팔뚝이었다. 역시 바늘로 찌른 것처럼 작고 동그란 자국. 도윤 씨는 최근 부쩍 잠을 설쳤던 걸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뭔가에 긁힌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숫자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셋째 날 아침, 세 번째 자국을 발견한 도윤 씨는 문득 선반 위 지우개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별다른 이유 없이 다시 개수를 세어 보았다.
스무 개.
분명 처음 주웠을 때 열일곱 개였다. 사흘 사이 정확히 세 개가 늘어 있었고, 그동안 자신의 몸에 생긴 자국도 정확히 세 개였다. 도윤 씨는 자신이 잘못 세었으려니 하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몸에 자국이 하나 더 늘어난 그 순간, 인형의 바늘구멍도 정확히 하나 더 늘어 있었다.
몸에 자국이 하나 생기는 날, 인형의 구멍도 정확히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했다. 도윤 씨는 그날부터 매일 아침 자국 개수와 인형의 구멍 개수를 함께 세기 시작했다.
치워도 돌아오는 인형
도윤 씨는 인형을 현장 폐기물 자루에 넣어 버렸다. 그날 밤은 자국이 늘지 않았다. 안심하고 다음 날 작업실 문을 열었을 때, 인형은 원래 있던 선반 위, 정확히 같은 자리에 다시 놓여 있었다.
리본 방향까지 똑같았다.
도윤 씨는 그제야 공책 조각 속 이름을 다시 살펴봤다. 여러 장에 걸쳐 가장 많이 반복된 이름 하나. 나머지 소원들은 사소했지만, 그 이름 옆에는 유독 진하게 눌러쓴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다시는 이 학교에 못 오게 해주세요."
자국이 구멍을 앞지르던 날
며칠 뒤, 도윤 씨는 인형을 아는 후배에게 맡겨 며칠 다른 곳에 두게 했다. 신기하게도 그 며칠 동안 인형의 구멍 개수는 더 이상 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의 자국은 계속 늘었다.
자국 개수가 스물세 개가 되던 날, 돌려받은 인형의 구멍은 서른아홉 개—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정확히 스물두 개 늘어난 채 멈춰 있었다.
처음으로, 몸에 생긴 자국이 인형에 늘어난 구멍보다 많아졌다.
그날 밤 도윤 씨는 인형의 등 쪽 글씨를 다시 들여다봤다. 형광등 아래, 거의 지워졌던 볼펜 자국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떠올라 보였다. 두 글자, 세 글자. 낯익은 획의 배열.
도윤 씨는 그 순간 숨을 멈췄다. 흐릿한 그 글씨가, 자신의 이름과 겹쳐 보였다.
지금도 남아있는 것
도윤 씨는 다음 날 새벽, 공사가 끝나지 않은 그 건물로 혼자 돌아갔다. 인형을 처음 발견했던 벽 틈에 다시 밀어 넣고, 남은 자재로 그 틈을 완전히 막았다.
그 뒤로 몸에 새 자국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생긴 스물세 개의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흐릿한 흉터로 남아, 지금도 팔과 손목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도윤 씨는 요즘도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바늘로 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 벽 틈 너머, 아직 거기 있을 인형을 떠올린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