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나눔으로 받은 낡은 헝겊 인형
조민경 씨(가명, 34세)는 프리랜서 편집자다. 3년째 자취 중인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며, 이사를 준비할 때마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습관이 있었다. 필요한 물건은 사고, 필요 없는 물건은 동네 중고거래 앱의 무료나눔 게시판을 통해 정리하곤 했다.
그날 밤도 습관처럼 무료나눔 게시판을 넘겨보던 중, 사진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 빛바랜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손바닥만 한 헝겊 인형이었다. 한쪽 눈은 까만 단추였고, 다른 쪽 눈은 회색 실로 얼기설기 꿰맨 자국뿐이었다. 게시글 제목은 짧고 무심했다.
"이사 정리하다 나온 인형이에요. 상태는 사진 참고하시고,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민경 씨는 별생각 없이 채팅을 걸었다. 상대는 몇 마디 답장 끝에 약속 장소와 시간만 짧게 정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 약속한 편의점 앞 벤치에 나타난 사람은 없었다. 비닐봉투에 담긴 인형만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채팅창에는 메시지 한 줄이 떠 있었다.
"먼저 두고 갈게요. 죄송합니다."
그 뒤로 그 계정은 다시 답장하지 않았다.
자꾸만 찝찝해지는 이유
인형을 집에 들인 첫날 밤부터 민경 씨는 낯선 냄새를 맡았다. 오래 닫혀 있던 다락방, 혹은 한 번 젖었다 마른 종이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였다. 인형을 세제로 문질러 빨아도 냄새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위화감은 더 짙어졌다. 목 부분에는 여러 번 뜯었다 다시 꿰맨 듯한 실밥 자국이 목걸이처럼 둥글게 나 있었다. 놀러 온 친구는 인형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눈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
민경 씨는 웃어넘겼지만, 그날 밤 혼자 잠들기 전 서랍 속 인형 쪽을 몇 번이나 다시 돌아봤다. 결국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인형을 재활용 쓰레기와 함께 내놓기로 했다. 봉투에 넣어 분리수거장에 내려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버려도, 버려도 돌아왔다
사흘 뒤, 발신인 없는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그 인형이 얌전히 들어 있었다. 동봉된 메모에는 "분실물로 접수되어 발송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뿐, 보낸 곳도 접수 번호도 적혀 있지 않았다. 민경 씨는 무언가를 분실 신고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지하철역 분실물센터에 아예 맡기고 왔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1층 로비에 놓고 가신 물건이 있어서요." 민경 씨는 아무것도 놓아둔 적이 없었다. 로비 CCTV에는 얼굴이 잘 잡히지 않는 누군가가 인형을 데스크 위에 살며시 올려두고 사라지는 장면만 남아 있었다.
세 번째는 아예 다른 동네까지 나가 쓰레기통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날 밤 늦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낯선 이웃이 인형을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저기, 이거... 이 집 거 아니세요? 계단참에 떨어져 있길래요."
민경 씨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이웃은 같은 건물, 심지어 같은 층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처음 나눔을 준 사람을 찾아봤다
그날 밤, 민경 씨는 처음 채팅을 나눴던 대화방을 다시 열었다. 상대방 프로필을 눌렀다. 화면에는 짧은 문구 하나만 떠 있었다.
"탈퇴한 사용자입니다."
거래 기록을 거슬러 확인해 보니, 그 계정은 인형을 나눔한 날짜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활동이 끊겨 있었다. 정확히는, 민경 씨가 그 사람과 채팅을 주고받고 약속을 잡았던 그 며칠 동안, 그 계정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민경 씨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대화를 나눴던 상대가 누구였는지, 애초에 알 수 없었다는 것을.
실 뜯긴 자국
그날 밤, 민경 씨는 결심한 듯 인형을 손에 쥐고 목 부분의 실밥 자국을 다시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가장 최근에 뜯겼다 다시 얼기설기 꿰매진 흔적이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실을 하나씩 풀어냈다.
솜 대신 뭉쳐진 머리카락 한 줌이 먼저 흘러나왔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민경 씨의 것과는 다른, 훨씬 오래되어 뻣뻣하게 굳은 머리카락이었다.
그 사이로 손톱만 하게 접힌 낡은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거기엔 낯선 필체로,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조민경.
이름 옆에는 오래전 살던 동네의 옛 주소까지 함께 적혀 있었다. 민경 씨 자신도 거의 잊고 지내던,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동네였다. 어떻게 그 정보를 알고 있는 건지, 누가 언제 적어놓은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곁에 두고 있다
그 뒤로 민경 씨는 인형을 다시 버리지 않았다. 버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는 게 더 무섭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인형은 지금도 민경 씨의 책상 서랍 안에 놓여 있다. 가끔 서랍을 열 때마다, 실로 얼기설기 꿰맨 눈이 아주 조금씩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시 무료나눔으로 유독 오래되고 손때 묻은 인형이나 헝겊 소품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그 안쪽 실밥을 한 번쯤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