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상자 속의 스웨터
이수진 씨(가명, 26세)는 지난달 외할머니를 떠나보냈다. 장례를 마치고 한 달이 지나서야 그녀는 외할머니가 살던 낡은 다세대주택을 정리하러 갔다. 어머니와 이모들이 큰 짐들을 먼저 처분한 뒤라, 수진 씨에게 남은 일은 옷장 서랍 깊숙이 남은 자잘한 물건들을 살피는 것뿐이었다.
옷장 맨 아래 서랍에서 수진 씨는 낡은 종이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 연한 아이보리색 털실 뭉치와 함께, 반쯤 짜다 만 스웨터가 들어 있었다. 한쪽 소매는 손목 부분까지 완성되어 있었지만, 다른 쪽은 몸판에서 겨우 몇 단만 올라가다 멈춰 있었다. 대바늘 두 개가 마지막 코에 그대로 꽂힌 채, 실 한 가닥이 바늘귀에 걸려 있었다. 마치 뜨던 사람이 방금 자리를 비운 것처럼.
이모에게 물어보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두 달 전부터 매일 밤 그 스웨터를 뜨고 계셨다고 했다. "네 거라고 하셨어. 손이 시리다고 하면서도 놓지를 않으시더라." 수진 씨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미완성의 소매를 쓸어내렸다.
마저 뜨지 못한 소매
그날 밤 수진 씨는 스웨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완성되지 못한 채 버려두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손뜨개는 배운 적이 없었지만, 인터넷 영상을 보며 서투른 솜씨로 나머지 소매를 이어 뜨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 마침내 마지막 코를 마무리했다. 실을 끊고 스웨터를 펼쳐 들었을 때, 수진 씨는 이상하게도 후련함보다 서늘한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마치 끝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억지로 끝낸 기분이었다.
그날 밤, 수진 씨는 스웨터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스웨터를 입지 않았는데도.
손목에 감긴 낯선 실
다음 날 아침, 수진 씨는 오른손 손목에 감긴 가느다란 털실 한 가닥을 발견했다. 아이보리색. 스웨터와 똑같은 색이었다. 잠결에 스스로 만졌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풀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튿날 아침, 또 있었다. 이번엔 목덜미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었을 때 손끝에 걸리는 감촉. 가늘고 보드라우면서도 어딘가 축축한, 갓 짜낸 실 특유의 질감이었다. 길이는 전날보다 조금 더 길어져 있었다.
수진 씨는 옷걸이에 걸린 스웨터를 확인했다. 실뭉치는 이미 다 써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웨터 자락에서부터 방바닥을 지나 침대까지, 눈에 잘 띄지 않는 얇은 실 한 줄이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끝을 따라가면 언제나 스웨터의 마지막 코, 자신이 마무리 지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달그락, 달그락
실은 매일 밤 몸의 다른 부위에 나타났다. 손목, 목덜미, 발목, 손가락 사이. 떼어내도 다음 날이면 반드시 다시 나타났고, 조금씩 길어졌다. 수진 씨는 자신이 잠든 사이 무언가가 자신의 몸에 실을 감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보름째 되던 밤, 수진 씨는 불도 끄지 않은 채 뜬눈으로 누워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방 안 공기가 훅 가라앉으며 서늘해졌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에서, 실이 살갗 위를 스치는 게 아니라 살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따갑지는 않았다. 다만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그 순간, 옷장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달그락.
바늘 두 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였다. 방 안에는 수진 씨 혼자였다. 옷장 문은 닫혀 있었다.
수진 씨는 몸이 굳은 채 그 소리를 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마치 누군가 어둠 속에서 쉬지 않고 코를 뜨고 있는 것처럼, 규칙적이고 차분한 리듬이었다.
한참 만에 용기를 내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스웨터는 옷걸이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마무리했던 마지막 코 옆으로, 분명 뜬 적 없는 새로운 단 하나가 이어져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보니 아직 실이 마르지 않은 듯 미세하게 따뜻했다.
아직도 자라고 있는 것
수진 씨는 그 뒤로도 스웨터를 버리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 손녀에게 주고 싶었던 단 하나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다 풀어내지 못한 미련이기도 했다.
지금도 스웨터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수진 씨의 손목과 목덜미에는 여전히 낯선 실이 감긴다. 실을 따라가면 언제나 그 옷걸이, 그 마지막 코로 이어진다.
수진 씨는 가끔 생각한다. 저 스웨터가 완전히 다 짜여지는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손목에 감긴 실의 길이로 매일 밤 느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