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유품
올해 31세인 이 씨(가명)는 지난 겨울,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경상북도 시골 마을에서 혼자 사셨고, 향년 89세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유품 대부분은 낡은 옷가지와 생활용품이었습니다. 그중 이 씨의 눈길을 끈 것은 서랍장 깊숙이 천으로 감싸져 있던 오래된 손거울 하나였습니다.
나무 테두리에 정교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거울 뒷면에는 한자로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 씨는 한자를 읽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유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거울을 서울 자취방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날 밤, 이 씨는 거울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잠들었습니다.
잠결에 들린 목소리
이상한 일이 시작된 것은 거울을 들인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친구가 아침에 이 씨에게 물었습니다.
"너 어젯밤에 누구랑 통화했어? 새벽에 목소리가 들리던데."
이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새벽에 깨어 있었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씨는 불안해져 스마트폰 녹음 앱을 켜놓고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녹음 파일을 재생했습니다.
새벽 2시 41분.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이 씨의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씨가 절대 하지 않을 말투였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낮고 갈라진 목소리.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쓰시던 그 억양 그대로였습니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나 왔다..."
같은 말이 4분 23초 동안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 씨의 등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자신은 경상도 사투리를 할 줄 모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거울 속의 다른 사람
이 씨는 불안했지만, 혹시 잠꼬대가 아닐까 하고 넘기려 했습니다.
결정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일주일 뒤였습니다.
퇴근 후 화장을 지우려고 화장대 앞에 앉았습니다. 할머니의 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거울 속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이 씨는 분명 무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울 속의 얼굴은... 웃고 있었습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 씨는 거울을 떨어뜨렸습니다.
거울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깨지지 않았습니다.
숨을 고르고 다시 거울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정상이었습니다. 자신의 겁에 질린 얼굴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이 씨는 다시 녹음 앱을 켰습니다.
새벽 3시 07분의 녹음.
이번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노래였습니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 이 씨에게 불러주시던 자장가. 그 멜로디를 이 씨의 목소리가, 할머니의 억양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난 뒤, 3초간의 침묵.
그다음에 들린 것은 이 씨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녹음 속에서, 89세 할머니의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내 거울... 돌려다오... 나는 아직 거기 있다..."
돌려보낸 거울
이 씨는 그 거울을 다시 천으로 감싸 할머니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서랍장의 원래 자리에 넣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날 밤부터 새벽 녹음에는 아무 소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나중에 큰어머니에게 그 거울에 대해 물었습니다.
큰어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 거울은 니 할머니가 젊었을 때부터 가지고 계시던 건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부하셨어. 절대 그 거울을 집 밖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할머니 영혼이 거기 깃들어 있다고... 우리는 다 미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씨는 지금도 가끔 새벽에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확인합니다.
방 안에 거울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화장실 거울 앞을 지날 때.
거울 속의 자신이 0.5초 정도 늦게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특정 장소를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