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구역의 마지막 당산나무
이문석 씨(가명, 42세)는 지방 중소도시 OO시 외곽 재개발 현장의 현장관리자다. 십 년 넘게 여러 현장을 돌며 일해온 그에게 이번 구역은 특별할 것 없는, 그저 조금 오래된 마을 하나를 밀고 아파트를 올리는 흔한 공사 중 하나였다.
문제는 부지 한가운데, 철거 대상 목록 맨 위에 있던 나무 한 그루였다. 둘레가 어른 세 명이 팔을 뻗어야 겨우 감쌀 만한 굵기의 느티나무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당산나무'라 불렀고,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준 신목이라 여겼다.
"고사부터 제대로 지내야 해요"
철거가 시작되기 며칠 전,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노인 한 분이 현장 사무실을 찾아왔다. 백발의 노인은 이문석 씨의 손을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저 나무 함부로 베면 안 돼요. 꼭 고사를 지내야 해.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노인의 말에 따르면 절차는 간단하지 않았다. 나무 밑동에 금줄을 완전히 두르고, 정식으로 제를 올려 나무의 넋을 위로한 뒤에야 벌목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 전에 도끼나 톱을 대면 나무에 깃든 것이 노한다는, 마을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이문석 씨는 미신이라 여기면서도, 공사 관행상 이런 절차를 아예 무시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고사상 하나 차리는 게 큰 비용도 아니었고, 인부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그냥 넘기면 찜찜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일정에 쫓겨 서두른 절차
그런데 문제는 일정이었다. 준공 기한은 이미 여러 차례 밀린 상태였고, 본사에서는 매일같이 진행 상황을 재촉했다. 고사를 지내기로 한 날 아침, 갑자기 장비 반입이 하루 앞당겨졌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인부들은 서둘러 상을 차렸다. 과일 몇 개, 막걸리 한 병, 향 하나. 금줄은 나무 밑동을 절반쯤 둘렀을 때, 크레인 기사가 "장비 대기 시간 끝났다"며 재촉했다.
이문석 씨는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결정했다.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마저 두릅시다."
절을 두 번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인부들은 곧바로 체인톱을 들었다. 금줄은 나무 밑동의 절반에만 매달린 채였다.
나무는 오후 늦게 완전히 잘려나갔다. 밑동만 남긴 채.
그날 밤부터
그날 밤, 이문석 씨는 야근을 하다 컨테이너 사무실 창밖을 무심코 내다봤다. 잘려나간 밑동 근처, 가로등 불빛이 닿는 자리에 무언가 검붉은 것이 번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확인해보니, 밑동에서 배어나온 진액이었다. 원래 느티나무 진액은 옅은 갈색이라던데,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짙고 붉었다. 인부 중 한 명이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저거 꼭... 피 같지 않아요?"
이문석 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날부터 이상한 일이 반복됐다.
밑동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잘라낸 나무의 나이테 단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나이테 한가운데, 색이 유독 짙게 뭉친 자리가 있었는데, 눈을 감아도 그 무늬가 그대로 떠올랐다.
밤마다 컨테이너 지붕 위로 무언가 무거운 것이 천천히 걸어 다니는 듯한 소리가 났다. 확인해보면 아무 흔적도 없었다.
홀로 남은 현장에서 마주친 것
일주일쯤 지난 어느 밤, 이문석 씨는 다음 날 있을 감리 점검을 앞두고 혼자 남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서류 뭉치를 챙겨 나오던 그는 무심코 밑동 쪽을 바라봤다.
밑동 위, 원래 완전히 걷어냈어야 할 금줄 조각이 다시 걸려 있었다.
분명 며칠 전 철거 인부가 완전히 치웠다고 보고했던 자리였다.
이문석 씨는 홀린 듯 그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밑동 주변 흙바닥에서 옅게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8월 밤인데도 그 자리만 서늘했다.
밑동 바로 옆, 어둠이 가장 짙은 자리에 무언가 서 있었다.
사람의 형체였다. 하지만 사람이라기엔 너무 가만히, 너무 오래 서 있었다.
이문석 씨는 숨을 멈췄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밑동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문석 씨 쪽을 향했다.
이문석 씨는 그 뒤로 어떻게 컨테이너까지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근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사
그 뒤로 공사는 계속 지연됐다. 장비가 원인 모를 고장을 일으키고, 인부가 다치는 사고가 잇따랐다. 어느 것 하나 딱히 설명되는 사고는 없었다.
밑동은 결국 완전히 파내 없앴다. 그런데 이문석 씨는 지금도 가끔, 파낸 자리 근처에서 그 반쪽짜리 금줄 조각을 본다. 분명 치웠는데, 다시 나타난다.
공사가 다시 밀리던 어느 날, 마을 관리소 직원이 지나가듯 말을 건넸다.
"이 동네 노인들 그러시더라고요. 신목은 벨 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예를 갖춰야 한다고. 어중간하게 손대면... 그게 오히려 더 안 좋다고요."
이문석 씨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그날 밤 밑동 옆에 서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반쪽짜리 금줄이 자꾸만 그 자리에 다시 걸리는지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