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빛을 스스로 지우는 밤
정하은 씨(가명, 31세)는 3년 차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재택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그는 유난히 예민한 잠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방 안에 작은 빛 한 줄기만 있어도,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하나에도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몇 년 전부터 하은 씨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두 가지를 반드시 챙겼다. 도톰한 암막 안대와, 귓구멍 모양에 맞게 눌러 넣는 압축 실리콘 소재의 수면용 귀마개. 안대로 눈을 가리고 귀마개를 꾹 눌러 넣으면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가 그 순간 사라졌다. 완벽한 어둠, 완벽한 고요. 하은 씨에게 그것은 안정이었다.
다만 한 가지, 하은 씨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하나 더 있었다. 종종 찾아오는 가위눌림이었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발끝부터 서서히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 처음 몇 번은 무섭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지나가길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익숙한 마비, 낯선 감촉
그날 밤도 다르지 않았다. 하은 씨는 늘 하던 대로 안대를 쓰고 귀마개를 밀어 넣은 뒤 이불을 덮었다. 잠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무게감이 발끝부터 차올랐다.
또 시작이구나, 하은 씨는 생각했다. 발목, 종아리, 허벅지 순서로 감각이 무뎌지고, 이내 팔과 가슴까지 짓눌리는 압박감이 퍼졌다. 눈은 안대에 가려 뜰 수도 없었고,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굳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완벽하게 막혀 있어야 할 귀마개 안쪽, 그 밀폐된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리는 아니었다. 소리가 들릴 리 없는 자리였다. 그것은 차라리 진동에 가까웠다. 아주 얕고 규칙적인, 무언가 숨을 쉬는 듯한 떨림이 고막 언저리에 닿고 있었다.
귓바퀴에 닿은 미지근한 숨
처음에는 이명이라 여겼다. 압박감 때문에 생기는 흔한 증상이라고, 하은 씨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또렷해졌다.
들숨과 날숨이 구별될 만큼.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리듬이 반복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은 씨는 깨달았다. 그것은 더 이상 귀마개 안쪽에서 울리는 진동이 아니었다.
귓바퀴 바깥쪽 피부에, 실제로 미지근한 무언가가 닿고 있었다.
숨결이었다.
누군가 아주 가까이에서, 하은 씨의 귀에 입술을 붙이듯 대고 숨을 쉬고 있었다.
눈은 뜰 수 없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하은 씨가 스스로 차단한 그 완벽한 침묵 속에서, 오직 그 숨결만이 감각의 전부로 남았다.
들이쉬고.
내쉬고.
점점 가까워지고.
하은 씨는 그 숨이 귓속 깊은 곳까지 닿을 것 같다고 느낀 순간, 정신을 잃듯 의식이 끊겼다.
아침, 뒤집혀 있던 귀마개
다시 눈을 뜬 것은 알람 소리 때문이었다. 몸은 평소처럼 움직였다. 하은 씨는 떨리는 손으로 안대를 벗고, 귀마개를 하나씩 빼냈다.
왼쪽 귀마개는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오른쪽 귀마개를 손에 쥔 순간, 하은 씨는 숨을 멈췄다.
안팎이 뒤집혀 있었다.
압축 실리콘 재질의 귀마개는 손으로 눌러 형태를 만들어 귓구멍에 넣는 구조였다. 스스로 뒤집힐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안쪽 면이 바깥으로, 바깥 면이 안쪽으로 완전히 뒤집힌 채, 그것은 미지근하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방문은 안에서 걸어 잠근 그대로였다. 창문도 밀폐되어 있었다. 함께 사는 사람은 없었다. 반려동물도 키우지 않았다.
뒤집힌 귀마개의 안쪽 면을 자세히 들여다본 하은 씨는 몸이 얼어붙었다. 그 면에는 옅게 눌린 자국이 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 오랫동안 그것을 입에 물고 있었던 것처럼.
그 후로도, 가끔
하은 씨는 그날 이후에도 귀마개를 버리지 못했다. 다만 잠들기 전, 반드시 귀마개 안쪽을 손끝으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마른지, 뒤집히지 않았는지, 몇 번이고 만져보고 나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분명 전날 밤 마른 새 귀마개를 꺼내 낀 것이 확실한데도, 아침에 협탁 위에 벗어둔 귀마개가 이미 살짝 축축해져 있는 날이 있다.
하은 씨는 그런 아침이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것을 세면대에서 씻어내고, 다시 서랍 속 새 귀마개를 꺼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