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놓치다
올해 24세인 이 씨(가명)는 서울 외곽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논문 마감이 코앞이라 매일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구실 시계를 확인한 것이 밤 11시 40분. 막차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이 씨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역에 도착했을 때, 철문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운행이 종료되었습니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외곽 지역이라 택시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배터리는 12%.
이 씨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다음 역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였고, 그 역 근처에 24시간 카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가장 빠른 길이 지하철 선로를 따라가는 지상 구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운행이 끝난 시간이니 전기도 차단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씨는 역 뒤편의 울타리 틈을 통해 선로변 길로 들어섰습니다.
터널 입구에서
선로를 따라 10분쯤 걸었을 때, 짧은 터널이 나타났습니다.
지상 구간과 지상 구간 사이를 잇는 약 200미터짜리 짧은 터널. 낮에 지하철을 타고 지나갈 때는 몇 초 만에 지나가는 구간이었습니다.
이 씨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터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습니다. 핸드폰 빛이 3미터 앞까지만 닿았습니다. 벽면에는 이끼 비슷한 것이 끼어 있었고, 어딘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습니다.
똑. 똑. 똑.
터널 중간쯤 왔을 때, 이 씨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물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속삭이는 소리.
처음에는 바람인 줄 알았습니다. 터널 안에서 바람이 울리면 그런 소리가 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씨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아는 것
"...이... 현... 수..."
이 씨의 본명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쓰는 이름이 아니라, 가족만 부르는 이름.
이 씨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이... 현... 수... 이리... 와..."
소리는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이 씨가 들어온 터널 입구 쪽에서.
이 씨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본능이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거의 뛰다시피 터널 출구를 향해.
속삭임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현수. 왜 대답을 안 해."
목소리가 바뀌었습니다. 속삭임이 아니라 또렷한 말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 씨의 어머니 목소리였습니다.
이 씨의 어머니는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씨의 다리가 멈추었습니다.
"현수야. 엄마야. 왜 혼자 이런 데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 생전의 목소리와 완벽하게 같았습니다. 따뜻하고 걱정스러운 그 말투.
이 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벽에서 나온 손
터널 뒤쪽, 이 씨가 걸어온 방향.
핸드폰 빛이 닿는 가장 먼 곳.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터널 벽면에서 손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얀 손. 벽면의 콘크리트 사이로, 마치 벽 안에 사람이 갇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손이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한 개가 아니었습니다.
수십 개의 하얀 손이 양쪽 벽면에서 나와 있었습니다.
어떤 손은 꽉 쥐어져 있었고, 어떤 손은 손가락을 쫙 편 채 허공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어떤 손은 이 씨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이현수. 이현수. 이현수. 이현수."
전부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이 씨는 비명을 지르며 터널 출구 쪽으로 뛰었습니다. 핸드폰을 떨어뜨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맨바닥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도 기어서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터널 밖. 가로등 아래. 이 씨는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 찢어진 채로 10분 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길
이 씨는 그날 새벽,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이 씨는 그 터널을 지나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낮이었습니다. 열차가 터널을 지나는 몇 초 동안, 이 씨는 창문 밖을 보았습니다.
벽면은 평범한 콘크리트였습니다. 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 너머로, 터널 벽면에 뭔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국.
사람 손바닥 크기의 자국이 벽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얀색으로.
이 씨는 그 뒤로 그 노선을 타지 않습니다. 논문 때문에 매일 학교에 가야 하지만,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한이 있더라도 지하철은 타지 않습니다.
이 씨가 떨어뜨린 핸드폰은 다음 날 터널 점검 직원이 발견해서 돌려주었습니다.
핸드폰 갤러리에 사진 한 장이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이 씨가 찍지 않은 사진.
터널 벽면을 향해 찍은 사진. 수십 개의 하얀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촬영 시각은 새벽 1시 23분.
이 씨가 터널에 있었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특정 노선이나 역을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