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워크숍, 그 산장
정지훈 씨(가명, 31세)가 다니던 회사는 매년 가을이면 팀 단위로 워크숍을 떠났다. 그해는 강원도 산속, 작은 저수지를 낀 외딴 펜션이 목적지였다.
차로 두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휴대폰 신호도 자주 끊겼고, 편의점 하나 없었다. 대신 가을 단풍이 저수지 물 위에 그대로 비쳐서, 다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팀에는 입사 2년 차인 한소연 씨(가명, 27세)도 있었다. 밝고 붙임성 좋은 후배였다. 첫날 저녁, 다 함께 고기를 굽고 웃고 떠드는 동안 한 씨도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다만 저녁 9시가 넘어가자, 한 씨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머리가 좀 아파서요."
웃으며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낮과 밤이 다른 사람
둘째 날 아침, 한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파스를 붙여줬다.
그런데 점심때가 되자 이번엔 발목이 아프다고 했다. 오후에는 허리였다. 통증이 마치 몸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정 씨는 걱정이 되어 화상 진료를 연결해줬다. 의사는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고 했다.
"피로 누적이나 스트레스성일 수 있어요."
이상한 건 밤이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면 한 씨는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낮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목소리 톤도 낮아지고, 말투도 평소와 조금씩 달라졌다.
셋째 날 밤, 다 같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 있을 때였다. 한 씨가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여기 오래됐네. 정말 오래됐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사진 속 그 눈
그 밤, 다 같이 찍은 단체 사진을 확인하다가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사진 속 한 씨의 눈이 이상했다. 초점이 하나도 맞지 않았고,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허옇게 비어 보였다. 다른 사진 두 장을 더 확인했다. 전부 마찬가지였다.
정작 한 씨 본인은 사진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원래 사진 잘 안 받아요."
웃으며 넘겼다.
넷째 날, 정 씨는 한 씨와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 씨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제 몸이... 제 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다 보이긴 하는데, 멈출 수가 없어요. 마치 뒤에서 구경만 하는 느낌이에요."
정 씨는 그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워크숍 끝나면 병원부터 가보자고 다독였다. 그날 밤에도 통증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번엔 목이었다.
비 오는 마지막 밤
일정 마지막 날, 예보대로 비가 쏟아졌다. 저녁 식사 자리, 펜션 사장님까지 합석해 다 같이 술 한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8시를 넘긴 순간, 한 씨가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방 안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갔다. 창문이 닫혀 있는데도 입김이 보일 정도였다. 촛불 하나가 이유 없이 크게 흔들리다 꺼졌다.
한 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완전히 흰자위뿐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한 씨의 것이 아니었다. 낮고 갈라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내려놔. 여긴 내 자리야."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정 씨는 일어나 다가가려 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다리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씨가 맨발로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빗속으로. 저수지가 있는 방향이었다.
펜션 사장님이 그제야 소리쳤다.
"잡아요! 저기 가면 안 돼!"
몇 명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뛰쳐나가 한 씨를 붙잡았다. 저수지 앞,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자리였다. 한 씨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왔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한 씨는 정신을 잃어 있었다. 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것
한 씨는 깨어난 뒤 그날 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특이 소견은 나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몸을 옮겨 다니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며칠 뒤, 펜션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저수지 자리는 원래 마을이 있던 곳인데, 수십 년 전 수몰되면서 미처 옮기지 못한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진다고 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사장님도 말을 흐렸다.
한 씨는 지금도 가끔, 저녁 8시가 지나면 정 씨에게 문자를 보낸다.
내용은 항상 똑같다.
"저 오늘도 괜찮았죠?"
정 씨는 아직도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 아닌, 여러 공포 체험담의 요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각색물입니다. 등장인물, 장소, 상황은 모두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특정 장소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