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들어간 가면극 동아리
이수아 씨(가명, 21세)는 올해 갓 입학한 새내기였다. 새내기 배움터에서 열린 동아리 박람회를 둘러보다가, 유독 눈에 띄는 부스 하나를 발견했다.
전통연희동아리 '소리결'. 부스 앞에는 알록달록한 가면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선배들이 직접 쓰고 시범을 보이는 춤사위가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했다.
말을 걸어온 선배는 친절했다. "한 학기만 해봐도 재밌어요. 몸으로 배우는 거라 부담 없어요." 수아 씨는 별생각 없이 가입 신청서를 썼다. 그저 대학 생활의 낭만 같은 것을 하나쯤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동아리방은 학생회관 지하 구석에 있었다. 낡은 나무 마루와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가면 진열장이 인상적이었다. 향냄새인지 나무 냄새인지 모를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가면
입학 첫 달, 신입생 환영 공연 '새내기 맞이 소리마당'의 배역을 정하는 자리가 열렸다. 선배들은 저마다 익숙한 배역을 하나씩 골랐고, 남은 배역은 신입생들에게 돌아갔다.
진열장 맨 구석, 다른 가면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걸린 가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무 결이 거뭇하게 삭고, 한쪽 눈가에 깊게 갈라진 금이 간 낡은 가면이었다. 이름표에는 붓글씨로 '곱분할매'라고 적혀 있었다.
"저건... 아무도 안 써요." 옆에 있던 동기가 작게 속삭였다.
이유를 묻는 수아 씨에게 선배들은 웃으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결국 가장 늦게 도착한 수아 씨에게 배역이 돌아갔다. 곱분할매 역. 다른 신입생들의 표정에 스치는 안도가 수아 씨는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선배가 몰래 알려준 규칙
연습이 시작되기 전, 유일하게 진지한 얼굴을 한 3학년 박준혁 선배가 수아 씨를 따로 불렀다.
"이건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우리 동아리에서 그 가면 쓰는 사람한테는 꼭 전해주는 게 있어."
선배가 알려준 규칙은 네 가지였다.
하나, 가면을 쓴 채로 거울을 보지 말 것.
둘, 공연이 끝나면 관객에게 등을 보이지 말고 뒷걸음으로 물러난 뒤에 벗을 것.
셋, 정해진 춤사위 순서를 절대로 바꾸거나 빠뜨리지 말 것.
넷, 벗은 가면은 반드시 얼굴이 바닥을 향하게 상자에 넣을 것.
"선배들도 어디서 전해 들었는지는 몰라. 그냥... 지키라고 해서 지키는 거야." 준혁 선배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수아 씨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미신 정도로 여겼다.
한 박자씩 어긋나는 몸
연습 초반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공연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수아 씨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해진 춤사위대로 팔을 뻗으려 하면, 손끝이 아주 살짝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동작이 한 박자 늦게, 혹은 한 박자 빠르게 어긋났다.
"수아야, 방금 그 동작 뭐야? 원래 순서에 없는 건데." 연습이 끝난 뒤 준혁 선배가 물었다. 수아 씨는 자신이 무슨 동작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있을 때면,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팔다리가 스스로 다음 동작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지하철 안에서 터져 나온 춤사위
신입생 환영 공연 당일. 수아 씨는 규칙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무대에 올랐다. 등을 보이지 않고 물러나며 가면을 벗었다. 벗은 가면은 상자에 얼굴이 아래를 향하도록 조심스레 넣었다.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안도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열차가 한 정거장을 지날 무렵, 수아 씨의 오른팔이 갑자기 크게 허공을 갈랐다. 곱분할매의 춤사위, 그 특유의 동작이었다.
당황해서 팔을 거두려 했지만, 몸은 이어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고개가 옆으로 꺾이듯 기울고, 두 손이 얼굴 앞에서 원을 그렸다.
주변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누군가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이쪽을 향했다. 수아 씨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겨우 동작이 멈췄을 때,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30년 전 사진 속 낯익은 얼굴
그 일을 준혁 선배에게 털어놓자, 선배는 한참을 망설이다 동아리방 구석 캐비닛에서 낡은 앨범 하나를 꺼내왔다. 표지에 붙은 라벨에는 빛바랜 글씨로 삼십여 년 전 연도가 적혀 있었다.
앨범을 넘기던 수아 씨의 손이 한 장에서 멈췄다. 곱분할매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선 흑백 사진 속 선배. 가면 아래로 드러난 눈매와 목선이, 이상하리만치 수아 씨 자신과 닮아 있었다.
졸업생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강태영 OB가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그 선배, 공연 끝나고 얼마 안 돼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 자취방도 빼고, 연락도 끊기고. 다들 갑자기 그만뒀다고만 알고 있지."
강 OB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거울 앞에 선 밤
며칠 뒤, 늦은 연습을 마치고 혼자 남은 수아 씨는 소품을 정리하다가 무심코 가면을 다시 써보았다. 그저 궁금해서였다.
그 순간, 동아리방 한쪽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규칙을 어겼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거울 속에는 수아 씨의 얼굴 위로 가면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눈매가 다르게 휘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고, 고개가 기울고, 다리가 낯선 걸음을 밟았다. 멈추려 할수록 동작은 더 선명해졌다.
거울 속의 그것이, 수아 씨를 향해 웃고 있었다.
지금도 상자 뚜껑을 열지 않는 이유
정신을 차렸을 때, 수아 씨는 동아리방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가면은 손에서 떨어져 옆에 놓여 있었다.
그날 이후로 수아 씨는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다만 곱분할매 가면만은 절대 상자에서 꺼내지 않는다. 상자는 얼굴이 아래를 향한 채로, 진열장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가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때나 강의를 듣다가 멍하니 있을 때, 손끝이 저절로 허공에 작은 원을 그리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수아 씨는 조용히 손을 꽉 쥔다. 그리고 생각한다. 상자 뚜껑이, 지금 잘 닫혀 있는지.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특정 전통 가면극, 무형문화재와는 무관한 가상의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