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탐방으로 시작된 우연
한도영 씨(가명, 29세)는 3년째 폐가와 폐건물을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는 크리에이터다. 이번에 찾은 곳은 지방의 한 산자락, 20년 가까이 방치된 채 남아 있는 낡은 리조트 건물이었다. 원래 이름은 오래전에 잊혔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저 "그 산속 리조트"로만 불렸다.
같이 촬영을 다니는 후배 오민재 씨(가명, 26세)와 함께, 두 사람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해 장비를 챙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는 이미 절반쯤 무너져 있었고, 깨진 유리창 사이로 저녁 바람이 스산하게 들이쳤다.
"여기 진짜 오래 비어 있었나 보네요." 민재 씨가 카메라를 들며 중얼거렸다. 도영 씨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늘 그렇듯, 폐건물은 낮에는 그저 낡고 먼지 쌓인 공간일 뿐이었다.
벽에 남은 붉은 글씨
3층 복도를 촬영하던 중, 민재 씨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복도 끝 벽면에, 붉은 페인트로 휘갈긴 글씨가 남아 있었다.
"살려주세요."
그 옆으로 크고 작은 십자가 모양이 여러 개 겹쳐 그려져 있었다. 어떤 것은 선이 흔들려 있었고, 어떤 것은 몇 번이고 덧그려 굵어져 있었다. 페인트는 오래돼 색이 바랬지만, 유독 그 글씨 주변만 색이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도영 씨는 카메라를 그 벽에 가까이 대고 줌을 당겼다. 화면 속에서 글씨를 확대해 보던 순간, 손끝이 서늘해졌다. 붉은 페인트 자국 아래로, 손톱으로 긁은 듯한 가느다란 홈이 벽을 따라 나 있었다. 페인트보다 더 깊고, 더 오래된 흔적처럼 보였다.
"이거 낙서치고는… 좀 이상한데요." 민재 씨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도영 씨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카메라를 거뒀다.
비닐로 완전히 막힌 304호
복도를 따라 걷던 두 사람은 304호 앞에서 멈춰 섰다. 다른 방들은 문이 부서지거나 활짝 열려 있었지만, 그 방만은 달랐다.
문틈과 창문 전체가 두꺼운 비닐로 겹겹이 덮여 있었다. 테이프로 가장자리까지 꼼꼼하게 붙여, 안쪽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아주 공들여 밀봉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관리하다가 막아놓은 건가?" 민재 씨가 물었지만, 도영 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방치된 폐건물에, 이렇게 새것처럼 깨끗한 비닐이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비닐 표면에 손을 대자, 안쪽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바람 때문이라기엔 너무 규칙적이었다. 마치 무언가 얇은 막 너머에서, 아주 천천히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도영 씨는 비닐 한쪽 모서리를 살짝 들춰보려 했다. 그 순간, 방 안쪽에서 낮고 축축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리고, 아주 작게, 긁는 소리.
민재 씨가 도영 씨의 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그대로 카메라만 챙겨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새벽마다 드나든다는 것
촬영을 접고 마을 어귀 식당에 들렀을 때, 주인은 두 사람의 행선지를 듣고는 낯빛이 굳었다. "그 리조트, 낮에는 몰라도 새벽에는 얼씬도 하지 마세요."
주인의 말로는, 몇 년 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새벽 서너 시쯤 그 건물 주변에서 인기척을 봤다고 했다. 불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누군가 건물 안팎을 오가는 그림자를. 가까이 가서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다들 그저 커튼 사이로 흘낏 보고는, 다시는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몇 번은 새벽에 그 안에서 불빛이 비쳤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그 건물, 전기 끊긴 지가 언젠데."
도영 씨와 민재 씨는 그날 밤 촬영 영상을 정리하다가, 304호 앞에서 찍은 영상 마지막 몇 초에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비닐 표면,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 반대쪽에서, 아주 희미하게 손자국 같은 형태가 안쪽에서 눌린 채 부풀어 올랐다가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그 방
영상은 결국 공개하지 못했다. 편집하던 파일이 몇 번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상됐고, 304호 장면이 담긴 구간만 매번 재생이 멈췄다.
도영 씨는 지금도 가끔 그 복도의 붉은 글씨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방을 그렇게 꼼꼼히 밀봉한 것은, 안에 있는 무언가를 가두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밖에 있는 누군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는지.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새벽이면 그 리조트 주변에서 그림자를 본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비닐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러 가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