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첫날부터 이상했던 것
박세아 씨(가명, 31세)는 세 달 전 원룸으로 이사했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창이 커서 채광이 좋았다. 이사 온 첫날 밤,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짐을 정리하던 세아 씨는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다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손을 들어 올리는데, 그림자의 손이 반박자 먼저 움직인 것 같았다. 착각이라 여기고 넘겼다.
반박자 빠른 그림자
며칠 뒤부터 세아 씨는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화장실 불빛 아래에서 머리를 넘기려고 손을 들면, 벽 그림자는 이미 그 동작을 끝내고 있었다. 마치 그림자가 세아 씨보다 앞서서 움직이고, 세아 씨의 몸이 그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자 다들 웃으며 "예민해진 거다"라고 했다. 세아 씨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스탠드를 꺼도 남는 그림자
한 달쯤 지난 어느 밤, 세아 씨는 스탠드 조명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방은 완전히 어두워졌어야 했다. 그런데 벽 쪽, 방금 스탠드가 있던 자리 근처에 사람 형체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불을 껐는데 그림자만 지워지지 않은 것이다.
세아 씨는 숨을 죽이고 그 그림자를 지켜봤다. 그림자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듯한 동작을 했다. 세아 씨 쪽을 향해서.
여섯 시 정각
이후로 세아 씨는 매일 저녁 6시 정각에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걸 알아챘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창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햇빛에 세아 씨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게 늘어지는 그 시간. 그때마다 그림자는 세아 씨의 실제 자세와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세아 씨가 소파에 앉아 있어도 그림자는 서 있었고, 세아 씨가 가만히 있어도 그림자의 손가락이 까딱거렸다.
그날도 여섯 시가 되자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번엔 벽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바닥을 타고 세아 씨 쪽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길게 늘어났다. 세아 씨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림자의 끝은 세아 씨의 발끝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가, 정확히 여섯 시 일 분이 되자 원래 길이로 되돌아갔다.
거울 속에서
그날 밤, 세아 씨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다가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자신의 뒤편 벽에, 그림자가 있었다. 세아 씨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화장실 조명은 거울 위쪽, 그러니까 세아 씨의 정면에 있었다. 뒤쪽 벽에는 그림자가 생길 수 없는 각도였다. 그런데도 거울 속에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세아 씨 뒤에 겹쳐 서 있었다.
세아 씨가 뒤를 돌아보자 화장실에는 아무도, 그림자를 만들 어떤 것도 없었다. 다시 거울을 보자 그림자도 사라져 있었다.
지금도
세아 씨는 이제 저녁 6시가 다가오면 불을 모두 켜둔 채 커튼을 닫는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애를 쓴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 써도, 방 안 어딘가에는 늘 옅은 그림자 하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세아 씨는 그 그림자가 언젠가부터 자신을 따라 늘어나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