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첫날 밤
박○○ 씨(26세, 가명)가 새 자취방으로 이사한 것은 5월의 어느 수요일이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의 오래된 반지하 원룸. 보증금이 저렴해서 선택한 집이었지만, 부동산 사장님이 열쇠를 건네주며 한마디 했던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밤에 좀 시끄러울 수 있어요. 건물이 낡아서요."
박 씨는 별생각 없이 짐을 풀었습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박스를 정리하고, 샤워도 못한 채 침낭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피곤했으니까, 금방 깊이 잠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새벽 3시 17분
핸드폰 화면에 새벽 3시 17분이 찍혀 있었습니다.
눈이 떠졌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천장 때문에 잠이 깼나 싶었습니다. 반지하라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고, 방 안은 애매하게 밝았습니다.
'다시 자야지.'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눈은 뜨여 있었습니다. 천장이 보였습니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가로등 빛이 벽을 타고 길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의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가위눌림이다.'
박 씨는 당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에도 두어 번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정하고 기다리면 풀린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귀에 닿을 듯 가까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보통의 가위눌림처럼 숨이 막히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누군가 가슴 위에 앉아 있는 느낌.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진짜 물리적인 압박감이 느껴졌습니다.
박 씨는 시선을 천장에 고정한 채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귀에, 누군가의 입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자신의 이름이었습니다.
박 씨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소름이 돋는다는 게 뭔지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알았어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게 느껴졌어요. 귀 바로 옆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고, 어른인지 아이인지도 모르겠는 목소리였어요. 그냥... 가족 중 누군가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목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 여기야."
몸이 굳어 있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천장만 보이고, 가슴 위의 무게만 느껴지고, 귀옆의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5분간의 지옥
나중에 시간을 따져보니 5분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 씨에게 그 5분은 평생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목소리는 세 번째 부를 무렵부터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또렷했는데, 점점 웅웅거리는 울림으로 바뀌더니, 마지막엔 마치 깊은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뭉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의 무게가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온몸이 풀렸습니다.
박 씨는 벌떡 일어나 방 안 모든 조명을 켰습니다. 구석구석 확인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사 온 첫날, 열어보지도 않은 박스들이 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방에 대해 알게 된 것
박 씨는 그날 이후 며칠을 뜬눈으로 보내다가 결국 이웃 주민에게 슬쩍 물어봤습니다.
이전 세입자에 대해 아느냐고.
이웃 주민은 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방에... 할머니 한 분이 오래 사셨는데. 혼자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발견이 좀 늦었다고 들었어요."
박 씨는 손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겨우 이렇게 물었습니다.
"언제요?"
이웃 주민이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작년 가을쯤 됐나. 새벽에 그러셨대요."
박 씨는 그달 말에 계약을 해지하고 이사했습니다.
지금도 혼자 잠을 자다 눈이 떠지면, 즉시 조명을 켭니다. 그리고 절대로 귀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릴까봐.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