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걱정에서 시작된 습관
박지훈 씨(가명, 29세)는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웹디자이너였다. 반지하는 아니었지만 볕이 잘 들지 않는 원룸이라 여름마다 벽지 구석에 곰팡이가 슬었다. 작년에 곰팡이 제거 비용으로 만만찮은 돈을 쓴 뒤, 지훈 씨는 스마트 온습도계를 하나 사서 방 한쪽 벽에 붙여두었다.
앱을 켜면 실시간 온도와 습도가 그래프로 기록됐다. 습도가 60%를 넘으면 알림이 왔고, 지훈 씨는 그때마다 제습기를 돌렸다.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자취 습관이었다.
문제는 팔월 말, 늦여름 무렵부터 시작됐다.
방 전체는 22도인데, 그 자리만
밤 11시쯤 스마트폰이 울렸다. "실내 온도 이상 감지 - 부분 저온". 처음 보는 알림이었다.
앱을 열어보니 이상했다. 거실 겸 방 전체 평균은 22도로 쾌적했는데, 센서가 놓인 벽 쪽 한 지점만 순간적으로 영하 2도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22도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도 밤 11시 07분, 정확히 그 시각이었다.
지훈 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센서 오류거나 외풍이겠지." 창문 틈을 점검하고 문풍지도 새로 붙였다. 그런데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앱의 온도 로그 그래프에는 매일 밤 11시 07분마다 뾰족하게 아래로 꺾이는 선이 찍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정확한 시간에 맞춰 그 자리에 냉기를 가져다 놓는 것처럼.
열화상 카메라 속 형체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지훈 씨는 회사 동료에게 스마트폰에 꽂아 쓰는 저가형 열화상 카메라 액세서리를 빌렸다. 그날 밤 11시, 알림이 뜨자마자 카메라를 그 구석에 겨눴다.
화면 속 방은 온통 붉고 노란빛이었다. 사람의 체온, 전자기기의 열기가 따뜻한 색으로 표시됐다. 그런데 문제의 그 구석만 짙은 남색과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푸른 얼룩 한가운데, 사람 형태의 윤곽이 서 있었다.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이.
지훈 씨는 숨을 죽이고 화면을 다시 봤다. 어깨선, 목덜미, 조금 굽은 등까지. 분명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하지만 육안으로 그 자리를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텅 빈 벽뿐이었다.
카메라를 내리고 맨눈으로 다시 확인했다. 벽지 위에 아주 얇게, 성에처럼 하얀 서리 결정이 맺혀 있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차갑고 축축했다.
3cm씩, 그래프가 알려준 것
지훈 씨는 그날부터 매일 밤 같은 시각에 열화상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나흘째 되던 밤,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다가 지훈 씨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실루엣의 위치가 조금씩 달랐다. 첫날 벽에 딱 붙어 있던 형체가, 둘째 날은 벽에서 살짝 떨어져 있었다.
온습도계 앱에는 저온 지점의 상대 위치 데이터도 함께 기록되고 있었다. 앱 고객센터에 문의해 얻은 답은 단순했다. "정밀 위치 추적 기능은 없지만, 센서 반경 내 최저온 지점의 상대 좌표는 대략적으로 표시됩니다."
그 좌표를 날짜별로 정리해보니 하루 평균 3cm씩, 방 안쪽 침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3cm. 하루에 딱 3cm.
아주 느리지만,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그것은 침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지훈 씨는 그제야 이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아직 넉 달이나 남아 있었고, 위약금과 새 보증금을 동시에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설마 벽까지밖에 더 오겠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밤마다 관찰만 이어갔다.
실루엣이 사라진 밤
이십여 일이 지난 어느 밤, 실루엣은 어느새 침대 프레임에서 두 걸음 정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훈 씨는 그 무렵 방에 불을 켜둔 채 잠드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날 밤, 스마트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평소와 다른 알림이었다.
"실내 온도 이상 감지 - 전체 구역 저온 경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였다. 지훈 씨는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들었다. 그 구석을 비췄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서리도, 붉고 노란 방 안에 홀로 떠 있던 그 짙은 남색 얼룩도, 등을 돌린 실루엣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앱 화면에는 방 전체 온도가 영하 1도까지 떨어졌다는 경고가 계속 갱신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메라로 방 전체를 훑어봐도 붉고 노란 온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침대, 책상, 냉장고 모두 평소와 같은 색이었다.
딱 한 군데만 빼고.
그것은 이제 구석에 있지 않다
지훈 씨는 카메라 화면을 침대 쪽으로 천천히 옮겼다.
베개 바로 옆, 이불이 접힌 자리에 짙은 보라색 얼룩이 있었다.
사람 하나가 누울 만한, 딱 그만한 크기였다.
지훈 씨는 그날 밤 이후로 그 원룸에서 더 지내지 못하고,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급히 방을 옮겼다. 부동산 사장은 "그 방은 원래 그런 이야기가 좀 있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지만, 사장은 대답 대신 계약서만 내밀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도 지훈 씨는 여전히 온습도계 앱을 켜둔다. 습관처럼, 혹은 확인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어서.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자다가 문득 눈을 뜨면 입김이 하얗게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지훈 씨는 절대 카메라를 켜지 않는다.
옆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스마트 온습도계나 열화상 카메라 액세서리 제품, 인물,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