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놓친 밤
올해 31세인 박 씨(가명)는 서울 강남의 한 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3월 초, 긴급 배포 작업이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회사를 나선 것은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0시 40분이었습니다.
지하철 막차는 이미 끊겼습니다.
박 씨는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금요일 새벽의 강남은 택시 전쟁이었습니다. 호출 앱에는 '주변에 가용 차량 없음'이라는 문구만 반복되었습니다.
"걸어가자."
박 씨는 지하철역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내일 아침 첫차라도 타려고 역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분명 운행이 종료된 시간인데, 승강장 조명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0시 57분의 열차
박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막차는 0시 20분에 이미 떠났을 시간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열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쿵. 쿵쿵쿵. 선로 위를 달리는 바퀴 소리. 점점 가까워지는.
개찰구는 열려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막혀 있어야 할 자동문이 양쪽으로 벌어진 채 박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었을까, 피로 때문이었을까. 박 씨는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열차가 서 있었습니다.
2호선 초록색 열차. 하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차체가 오래되어 보였습니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구형 모델이었습니다. 차량 번호도 박 씨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체계였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 씨는 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탔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냥... 타야 할 것 같았다고.
노선도에 없는 역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안내 방송은 없었습니다. 차내 전광판도 꺼져 있었습니다. 창밖은 터널의 어둠뿐이었습니다.
박 씨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0시 57분.
지하철 앱을 열어보았습니다. GPS 신호 없음.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5분쯤 달렸을까. 열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에 도착하는 것 같았습니다. 창밖으로 승강장이 보였습니다.
박 씨는 역명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역명판이 비어 있었습니다.
하얀 바탕에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은 역명판. 그런데 역의 구조는 분명 서울 지하철이었습니다. 타일 벽, 노란색 안전선, 스크린도어가 없는 오래된 형태의 승강장.
열차 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박 씨는 승강장에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
일곱 명이었습니다.
승강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서 있었습니다. 남자 네 명, 여자 세 명. 나이는 제각각이었습니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 교복을 입은 학생, 긴 코트를 걸친 여성.
그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선로 반대편. 벽.
그냥 벽을 보고 있었습니다. 미동도 없이.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정지한 채로.
박 씨는 소리쳤습니다.
"여기가 어디예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가장 가까이 서 있는 남성에게 다가갔습니다. 양복을 입은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습니다.
"저기요. 여기가 무슨 역이에요?"
남자의 어깨를 건드리려는 순간, 박 씨는 손을 멈추었습니다.
남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홍채가 없었습니다. 눈 전체가 하얗게... 아니, 정확히는 흐릿한 회색이었습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입술은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쉬이이이...
그제야 박 씨는 깨달았습니다. 일곱 명 전부가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승강장 전체에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쉬이이이이이이이...
닫히는 문
박 씨는 뒤로 물러났습니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온 것 같았습니다.
그때 열차 문이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박 씨는 뛰었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좁아지는 문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문이 박 씨의 외투를 물었지만, 필사적으로 잡아당겨 빠져나왔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박 씨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승강장.
일곱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박 씨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얀 눈. 벌어진 입. 안개 낀 회색 홍채.
그리고 한 명이 손을 들어올렸습니다. 천천히. 박 씨를 향해. 마치 "내려"라고 말하듯.
3분의 공백
박 씨가 다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강남역 승강장 벤치에 앉아 있는 자신이었습니다.
새벽 1시 12분.
열차는 없었습니다. 승강장은 운행 종료 후의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조명은 꺼져 있었고, 역무원이 박 씨를 발견하고 다가왔습니다.
"손님, 여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개찰구 다 닫혔는데."
박 씨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박 씨는 한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2호선 전체 노선도를 구석구석 살펴보았습니다. 이전 역명, 폐역, 건설 중 취소된 역.
그런 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지던 중, 박 씨는 소름 끼치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한 커뮤니티의 2019년 게시글.
'새벽에 운행 종료된 2호선을 탔습니다. 이름 없는 역에서 문이 열렸는데, 사람들이 서 있었어요. 일곱 명이요. 다들 벽을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2015년의 게시글.
'절대 타지 마세요. 새벽에 오는 열차. 내리면 돌아올 수 없어요.'
박 씨는 그 글들의 작성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두 계정 모두 탈퇴 상태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온라인에 떠도는 도시전설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습니다. 실존하는 특정 역이나 노선을 지목하지 않았으며,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