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여섯 달째 되던 집
올해 28세인 김하은 씨(가명)는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3층 다세대주택 302호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방 두 개짜리 전세를 겨우 구해 이사 온 지 여섯 달. 회사와 가까운 데다 월세보다 훨씬 저렴해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집은 낡았지만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다. 딱 하나, 밤이 되면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배관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문제는 이사 온 지 넉 달쯤 지난 어느 새벽부터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그저 배관 소리였습니다
새벽 2시 47분.
똑, 똑, 똑.
거실 벽 쪽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 번 두드리고, 잠깐 멈추고, 다시 세 번. 김 씨는 잠결에 배관이 얼었다 녹으면서 나는 소리려니 생각하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도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확히 2시 47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이상한 건 시간이었습니다. 배관 소리라면 날마다 시간이 조금씩 다르거나 온도에 따라 불규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마치 알람처럼 매일 같은 시각에 시작됐습니다.
소리가 저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밤, 김 씨는 물을 마시러 침실에서 거실 쪽 냉장고까지 걸어갔습니다. 침실 문에서 냉장고까지 정확히 열한 걸음.
그런데 등 뒤 벽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똑. 똑. 똑.
김 씨가 세 걸음을 걷자 소리도 세 번 울렸습니다. 김 씨가 멈추자 소리도 멈췄습니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걸어봤습니다. 이번엔 일부러 걸음 속도를 바꿔가며.
소리는 정확히 김 씨의 발걸음 수만큼, 발걸음 간격만큼 벽 속에서 울렸습니다.
벽 속의 무언가가 김 씨의 걸음을 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소리는 더 이상 한 곳에서만 나지 않았습니다. 김 씨가 거실에 있으면 거실 벽에서, 침실로 들어가면 침실 벽에서. 마치 벽 안쪽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따라 이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복도는 걸을수록 제자리였습니다
며칠 뒤, 김 씨는 낮 동안 정전이 되어 두꺼비집을 확인하러 공용 복도로 나갔습니다. 두꺼비집은 계단 옆, 302호에서 열한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열한 걸음을 걸었습니다. 두꺼비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걸었습니다. 이번엔 스무 걸음. 여전히 계단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복도 끝까지 걸었습니다. 그런데 복도 끝은... 다시 302호 현관문이었습니다.
김 씨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분명 앞으로만 걸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집 문 앞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시계를 봤습니다. 겨우 3분이 지났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훨씬 긴 시간, 어쩌면 삼십 분은 걸은 것 같았습니다.
김 씨는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 뒤 다시 걸었습니다. 이번엔 아홉 걸음 만에 두꺼비집이 나왔습니다.
벽 속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
그날 밤, 새벽 2시 47분.
똑, 똑, 똑.
이번엔 소리가 달랐습니다. 세 번의 노크 뒤에 하나가 더 붙었습니다.
똑, 똑, 똑, 똑.
김 씨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였습니다. 소리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벽 너머에서 무언가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김 씨는 다음 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벽 안에 배관 말고 다른 게 있는지 물었습니다.
집주인은 한참 말이 없다가, 그 집에 살던 이전 세입자도 같은 걸 물어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입자는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두 달 만에 나갔다고,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매일 밤
김 씨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증금 문제로 당장은 그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제 밤에 물을 마시러 갈 때도 걸음 수를 세지 않습니다. 발소리를 죽이고, 최대한 불규칙하게 걷습니다.
그런데도 벽 속의 소리는 매일 새벽 2시 47분이면 정확히 그녀가 있는 방향에서 울립니다.
그리고 가끔, 복도로 나가야 할 때면 김 씨는 두꺼비집까지 몇 걸음이 걸리는지 다시 셉니다.
어떤 날은 아홉 걸음. 어떤 날은 열일곱 걸음. 단 한 번도 같은 숫자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김 씨는 요즘도 궁금합니다. 그 복도를 걷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던 그 순간, 자신이 정말 열한 걸음만 걸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많이 걸었는데, 무언가가 그 기억을 지워버린 것인지.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