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후 귀갓길
박 씨(가명, 34세)는 경기도 북부의 한 물류센터에서 야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근무지가 외진 곳에 있다 보니 퇴근길은 항상 한적했습니다. 산을 하나 넘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2024년 11월, 금요일 밤.
박 씨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퇴근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때라 히터를 틀고, 라디오를 켜고, 평소처럼 터널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그 터널은 약 1.2킬로미터 길이의 왕복 2차선 터널이었습니다. 낮에는 차량 통행이 꽤 있었지만, 자정이 넘으면 거의 텅 비었습니다. 터널 안 조명도 절반 이상이 꺼져 있어서, 밤에 지나가면 묘하게 어두운 구간이 있었습니다.
박 씨는 그 터널이 교통사고 다발 지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그 터널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지나는 길이었기에 무감각해진 지 오래였습니다.
터널 입구에 다다랐을 때, 라디오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흔한 일이었습니다. 산 근처라 수신 상태가 안 좋았으니까.
박 씨는 라디오를 껐습니다.
터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수석의 이상한 냉기
터널에 진입한 지 약 30초. 터널 중간 지점에 가까워질 무렵이었습니다.
히터를 분명 틀어놓았는데, 차 안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그것도 운전석 쪽이 아니라 조수석 쪽에서 냉기가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박 씨는 히터 온도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추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조수석 쪽 유리창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11월이라 바깥이 차가운 건 맞지만, 히터를 최대로 틀었는데 유리창에 김이 서린다는 건 이상했습니다.
박 씨는 무심코 조수석 쪽을 흘끔 보았습니다.
빈 좌석이었습니다. 당연히.
하지만 그 순간, 백미러에 뭔가가 스쳤습니다.
박 씨는 백미러를 다시 보았습니다. 뒷좌석.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시선을 앞으로 돌리는 순간.
조수석 쪽 사이드미러에 하얀 것이 비쳤습니다. 길고 흰 머리카락. 사이드미러 전체를 가득 채울 만큼의 백발.
박 씨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본능적으로 조수석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이드미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까 그 백발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어두운 터널 벽면만 보였습니다.
박 씨는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빨리 이 터널을 빠져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때.
조수석에서 안전벨트가 '찰칵' 하고 잠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녀는 거기 앉아 있었다
박 씨는 조수석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전벨트는 분명히 잠겨 있었습니다. 아까까지 풀려 있던 조수석 안전벨트가 누군가 착용한 것처럼 당겨져서 잠겨 있었습니다.
안전벨트가 허공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처럼.
차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박 씨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냄새.
축축한 흙 냄새. 오래된 꽃 냄새. 장례식장에서 맡았던 그 냄새.
박 씨의 손이 핸들 위에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조수석의 시트가 눌렸습니다. 천천히. 누군가의 무게를 받아 쿠션이 내려앉는 것이 눈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귓가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자의 목소리.
낮고 쉰 목소리.
"...속도를 줄여요."
박 씨는 비명을 지를 수 없었습니다. 목이 막혀 있었습니다. 몸 전체가 얼어붙은 것처럼 경직되었습니다.
하지만 발은 움직였습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습니다.
그 순간.
터널 출구 직전, 맞은편에서 중앙선을 넘은 트럭이 돌진해 왔습니다.
박 씨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정면충돌이었습니다. 트럭은 경적을 울리며 다시 자기 차선으로 돌아갔고, 박 씨의 차는 가까스로 트럭을 피해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터널 밖.
박 씨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핸들을 잡은 채 떨었습니다.
조수석을 보았습니다.
안전벨트는 풀려 있었습니다. 시트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냄새도 사라졌습니다. 차 안 온도도 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수석 헤드레스트에 흰 머리카락 한 올이 걸려 있었습니다.
길고. 하얗고. 사람의 머리카락이 맞았습니다.
동료들의 증언
다음 주 월요일. 박 씨는 물류센터 동료들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놀랍게도, 동료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40대 배송기사 한 씨가 말했습니다.
"나도 봤어. 작년 겨울에. 사이드미러에 하얀 머리카락이 가득 비치더라고. 그리고 조수석에서 찬 바람이..."
20대 분류 작업자 정 씨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목소리까지 들었어요. 여자 목소리로 '멈춰요'라고. 그래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바로 앞에 고라니가 도로에 서 있었어요. 안 멈췄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센터장 오 씨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터널, 15년 전에 큰 사고가 있었어. 관광버스가 전복됐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 승객이... 백발의 할머니였대. 버스에서 유일하게 사망한 사람이 그 할머니였고."
박 씨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동료들의 증언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 자정 이후에만 나타난다.
둘, 조수석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셋, 백발이 사이드미러에 비친다.
넷,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전부 직후에 사고를 면했다.
그녀는 해치러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경고하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사람
그 뒤로도 박 씨는 매일 그 터널을 지났습니다. 하지만 백발의 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물류센터에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 윤 씨(22세)가 첫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밤이었습니다.
윤 씨는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윤 씨의 차가 터널 안에서 벽면을 들이받고 크게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고.
윤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윤 씨가 경찰에게 한 말.
"조수석에 할머니가 앉아 있었어요. 하얀 머리카락의. 근데 저는 너무 무서워서 핸들을 꺾었어요. 할머니가 뭐라고 했는데... 무서워서 못 들었어요."
박 씨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은 살았고.
무서워서 듣지 못한 사람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박 씨는 요즘도 그 터널을 지날 때마다 라디오를 끕니다. 히터도 끕니다. 조수석 안전벨트가 혹시 잠기지 않나 확인합니다.
그리고 만약 조수석에서 냉기가 느껴지면.
이번에는 끝까지 듣기로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전해지는 실제 괴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특정 터널을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야간 운전 시 항상 안전에 유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