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나만의 작은 부스
스물일곱 살 이수아 씨(가명, 27세)는 반년째 새벽 사연 라디오를 진행하는 1인 방송인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일이었다. 원룸 한쪽 벽을 계란판 흡음재로 채우고, 중고로 산 콘덴서 마이크 하나와 팝 필터, 스탠드 조명 하나를 놓은 게 그녀의 방송 부스 전부였다.
방송은 늘 새벽 두 시에 시작해 네 시쯤 끝났다. 시청자들이 미리 신청한 사연을 하나씩 골라 낮은 목소리로 읽어주는 게 콘텐츠의 전부였지만, 그 시간대에만 접속하는 단골 시청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헤드폰을 쓰고, 조명을 낮추고, 채팅창 인사를 마친 뒤 사연함을 열었다. 평소와 똑같은 새벽이었다.
"오늘도 잠 안 오시는 분들, 어서 오세요."
스스로 듣기에도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채팅창이 이상하게 술렁이던 밤
세 번째 사연을 막 읽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채팅창의 흐름이 갑자기 빨라졌다.
"어 목소리가 원래랑 달라요"
"지금 그거 님 목소리 아니잖아요"
"수아님 괜찮으세요??"
"저만 이상하게 들리나요 소름"
메시지가 순식간에 쌓였다. 이수아 씨는 채팅을 흘낏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난치는 시청자겠거니 싶었다. 목이 좀 잠긴 것 같긴 했지만, 감기 기운이려니 여겼다.
"목 좀 잠겼나 봐요, 물 한 잔 마실게요."
물을 마시고 다시 마이크 앞에 앉았다. 채팅창은 여전히 같은 문장을 반복하며 도배되고 있었다. 그녀는 정작 그 도배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화면이 너무 빨리 올라가서, 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에어컨 바람이 세게 나오나 보다 생각하며 리모컨으로 온도를 올렸다.
접수함에 있던 사연 하나
네 번째로 고른 사연은 유독 눈에 띄었다. 제목도 발신자도 없이, 본문만 짧게 남아 있는 사연이었다. 가족을 잃은 뒤 그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는, 짧고 담담한 내용이었다.
이수아 씨는 그 사연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느낀 건, 평소라면 감정을 살려 또박또박 읽었을 텐데, 이번에는 목이 저절로 낮고 느리게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목소리 진짜 다른 사람 같아요..."
"저 지금 소름 돋아서 이불 덮었어요"
"이거 원래 사연이었어요? 처음 듣는데"
채팅창은 그 사연을 읽는 내내 폭주하듯 올라갔다. 그런데 이수아 씨의 눈에는 그 문장들이 이상하게 흐릿하게만 스쳤다. 마치 자신이 화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대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연을 다 읽고 나서야 정신이 든 것처럼, 그녀는 잠시 멍하니 마이크를 바라봤다. 방금 몇 분 동안의 기억이 이상하게 흐릿했다.
방송을 마치고 본 채팅 로그
네 시가 되어 방송을 종료했다. 정리하며 채팅 다시보기를 켰다. 그제야 실시간으로는 제대로 읽지 못했던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그 구간만 목소리 완전 달랐음"
"저 그 사연 듣고 소름 돋아서 방송 껐다가 다시 켰어요"
"수아님 그 사연 어디서 받으신 거예요?"
같은 시간대, 같은 문장이 수십 개씩 반복되고 있었다. 그녀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방송 중에는 분명 채팅창을 보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도배되고 있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특히 그 발신자 없는 사연을 읽던 구간, 그 십여 분 동안의 채팅이 유독 몰려 있었다.
다시보기 파형에 겹쳐진 목소리
이수아 씨는 방송 편집용 프로그램을 켜고 다시보기 음원을 불러왔다. 습관처럼 스펙트로그램을 열어 파형을 눈으로 살폈다.
대부분 구간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연을 읽던 구간에서, 파형이 이상했다. 자신의 목소리 라인 위로, 아주 가늘고 옅은 선 하나가 겹쳐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최대한 줄여 그 구간만 반복해서 들었다.
자신의 목소리 아래에서, 다른 목소리가 아주 작게 섞여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자신보다 어리고, 갈라진 음성이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이 읽는 문장을, 반 박자 먼저 속삭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목소리를 따라 읽고 있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사연
이수아 씨는 손이 떨리는 채로 사연 접수 게시판 관리자 화면에 들어갔다. 그날 방송에서 읽었던 사연들의 접수 기록을 하나씩 확인했다.
다른 사연들은 모두 접수 시간과 발신 아이디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발신자 없는 사연만, 어디에도 기록이 없었다.
검색창에 사연 속 문장 일부를 넣어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그 사연은 시스템상 애초에 접수된 적이 없는 글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사연을, 자신은 분명히 소리 내어 읽었다.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으로.
채팅창에 남은 한 줄
그녀는 다음 방송 때, 조심스럽게 그날 밤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그 사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어디서 온 사연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채팅창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 줄이 올라왔다.
"그거, 제 동생 목소리예요."
이수아 씨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 시청자는 이어서,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이 생전에 하던 말버릇과 사연 속 문장이 똑같았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자신조차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고.
채팅창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무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도 새벽이면
이수아 씨는 여전히 새벽 사연 라디오를 진행한다. 다만 이제는 사연을 고르기 전, 발신자와 접수 시간을 두 번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끔 방송 중 목이 갑자기 낮게 잠기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채팅창은 조용히 술렁이지만, 그녀는 이제 애써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아직도 궁금하다. 그날 밤, 자신의 목과 목소리를 잠시 빌려 간 것이 정말 그 시청자의 동생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빌려 갈 수 있는 목소리를, 계속 찾고 있는 무언가였는지.
혹시 새벽 라디오를 듣다가, 진행자의 목소리가 한순간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그 순간의 채팅창을, 다시 한번 위로 올려보시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방송 플랫폼, 인물이나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