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가 줄어든 남편
한 씨(가명, 36세)는 결혼 2년 차로, 남편과 둘이 신축 빌라 3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방은 세 개입니다. 안방, 서재,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쓰려고 비워 둔 작은 방. 그 방에는 가구가 하나도 없고, 붙박이 옷장만 한쪽 벽에 달려 있습니다.
남편은 한 달 전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갓난아기 때부터 남편을 업어 키운 분이었습니다. 그 뒤로 조금 달라졌습니다. 말수가 줄었고, 밥상 앞에서 국을 먼저 떠서 후후 불어 식히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한 씨가 알던 남편은 뜨거운 국도 그냥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한 씨는 그렇게 넘겼습니다.
새벽 2시 12분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는 한 씨였지만, 그날 밤은 목이 말라 눈을 떴습니다. 협탁 위 시계는 2시 12분이었습니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이불은 반듯하게 개켜진 것처럼 젖혀져 있었고, 매트리스에 남은 온기는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불은 꺼져 있었습니다. 대신 복도 끝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였습니다. 노래 같기도 하고 중얼거림 같기도 했습니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박자는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달랠 때 부르는 가락이었습니다.
빈 방 쪽이었습니다. 문이 한 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창밖 가로등 불빛이 가늘게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씨는 맨발로 복도를 걸었습니다. 마룻바닥이 차가웠습니다. 문틈에 한쪽 눈을 가져다 댔습니다.
옷장 앞의 등
남편이 서 있었습니다.
잠옷 차림의 등이 보였습니다. 방 한가운데, 창으로 들어온 희뿌연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남편은 옷장을 향해 서서 천천히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품에 안은 무언가를 재우듯이요.
하지만 남편의 두 팔은 비어 있었습니다.
방에는 아기도, 이불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안고, 한 씨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늙은 여자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다 왔다. 인제 다 왔어."
한 씨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는데, 그 순간 마룻바닥이 삐걱 소리를 냈습니다.
노래가 멈췄습니다.
남편의 몸이 흔들림을 멈췄습니다. 고개가 아주 천천히, 목뼈가 한 마디씩 맞물리듯 돌아갔습니다. 어깨 너머로 눈이 보였습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는 한 씨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창으로 비스듬히 든 불빛에 남편의 얼굴 반쪽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입꼬리가 귀 쪽으로 낯설게 올라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 번도 그렇게 웃은 적이 없었습니다.
"새아가. 아직 안 잤냐."
남편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한 씨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고, 시부모님도 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 호칭으로 한 씨를 부른 사람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딱 한 번 병문안을 갔을 때, 병상에 기대앉은 할머니가 한 씨의 손을 꼭 쥐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 씨가 떠 드린 미음 숟가락을 받아 들고, 뜨겁지도 않은 것을 후후 불어 식혔습니다. 남편 어릴 적에 늘 그렇게 식혀 먹였다며 웃으셨습니다.
아침의 식탁
한 씨는 어떻게 안방으로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얼마 뒤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옆자리에 눕는 기척이 났습니다. 이불 속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아침이 되자 남편은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어젯밤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한 씨가 조심스레 빈 방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은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습니다. 그건 한 씨가 아는 웃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식탁에서 남편은 국을 떠서 후후 불었습니다. 그리고 한 씨를 보며 말했습니다.
"새아가, 너도 먹어라."
한 씨는 그날 이후 밤마다 시계를 보며 깨어 있습니다. 새벽 2시가 지나면 어김없이 옆자리가 비고, 복도 끝 빈 방에서 자장가가 시작됩니다. 한 씨는 이제 문틈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다만 얼마 전부터 노랫소리 사이에 다른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빈 방의 옷장 안쪽에서, 아주 작게,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이 이야기는 창작된 공포 이야기입니다.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인물·장소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