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대의 건조기
한 씨(가명, 27세)는 이달 초 자취방 세탁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집 근처 무인 코인세탁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곳이라, 야근이 잦은 한 씨에게는 오히려 편했습니다.
그날도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빨래 가방을 들고 유리문을 밀었습니다. 천장의 형광등 아래로 세탁기 여섯 대와 건조기 여섯 대가 벽을 따라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손님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 씨는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동전을 밀어 넣은 뒤, 접이식 테이블 앞에 앉아 휴대폰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건조기 줄에서 눈에 걸리는 것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왼쪽에서 네 번째 건조기에만 누렇게 바랜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사용 중지. 전원 코드는 벽 콘센트에서 뽑힌 채 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뽑힌 플러그, 따뜻한 유리
사십 분쯤 지나 세탁이 끝났습니다. 한 씨는 젖은 이불을 맨 왼쪽 1번 건조기로 옮기고 동전을 넣어 돌렸습니다. 둔탁한 회전음이 가게 안을 채웠습니다.
그 소리 사이에 다른 소리가 하나 섞여 있었습니다.
툭. 툭. 툭.
가벼운 천이 드럼 벽에 부딪히는 소리였습니다. 한 씨의 이불은 그렇게 가볍게 돌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들자, 4번 건조기의 둥근 유리창이 주황빛으로 은은하게 밝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회색 천이 천천히 돌고 있었습니다.
플러그는 여전히 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한 씨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가갔습니다. 유리에 손바닥을 대 보니, 막 꺼낸 빨래처럼 따뜻했습니다. 안쪽 유리에는 손자국 하나가 번져 있었습니다. 마치 안에서 누군가 눌러 본 것처럼.
드럼 속에서 도는 것은 회색 후드티였습니다. 소매 끝이 늘어진 모양도, 모자 끈 한쪽이 짧은 것도, 지금 한 씨가 입고 있는 옷과 똑같았습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팔꿈치 근처가 한 뼘쯤 찢어져 있었습니다. 한 씨의 후드티는 멀쩡했습니다.
저절로 열린 문
드럼이 멈췄습니다.
딸깍.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건조기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습니다. 한 씨가 쓰는 섬유유연제 냄새였습니다.
후드티가 문턱으로 미끄러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한 씨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주워 안쪽 라벨을 확인했습니다. 매직펜으로 적은 전화번호 뒷자리. 세탁소에 맡길 일이 있을 때마다 한 씨가 직접 적어 두는, 삐뚤어진 숫자 네 개였습니다. 목 뒤로 손을 넣어 자기 후드티의 라벨을 뒤집어 보았습니다. 같은 글씨, 같은 번짐이었습니다.
한 벌이던 옷이 두 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1번 건조기의 이불이 멈췄고, 형광등 하나가 껌벅였습니다. 한 씨는 이불도 후드티도 챙기지 못하고 문으로 달려갔습니다. 유리문을 당겨 열고 나가려는데, 오른쪽 팔꿈치가 문 손잡이 금속 모서리에 걸렸습니다.
찌익.
같은 자리, 같은 길이
다음 날 낮, 한 씨는 문에 붙어 있던 관리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관리인은 4번 건조기에는 설치한 뒤로 한 번도 전원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불은 1번 건조기 안에서 식어 있었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 씨의 후드티 오른쪽 팔꿈치에는 한 뼘짜리 찢어진 자국이 남았습니다. 어젯밤 4번 건조기 안에서 돌던 옷과 정확히 같은 자리, 같은 길이였습니다.
한 씨는 지금도 건조기에 빨래를 넣기 전에 먼저 다른 건조기의 유리창들을 들여다봅니다.
혹시 자기 옷이, 아직 생기지 않은 찢김을 먼저 달고 돌고 있지는 않은지.
이 이야기는 창작된 공포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는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