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체험 성지가 된 산기슭 분교
최다은 씨(가명, 24세)는 폐가 탐방 콘텐츠로 채널을 키워가는 크리에이터다. 최근 SNS와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흉가체험 성지"로 입소문이 난 산기슭의 폐분교 소식을 듣고, 후배 정하람 씨(가명, 22세)와 함께 촬영을 나서기로 했다.
30년 가까이 방치됐다는 그 분교는 원래도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삼각대를 든 사람들이 줄지어 드나들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도착한 날은 평일 저녁, 그것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주차장에는 차 한 대 없었고, 운동장에는 인기척조차 없었다.
"오늘은 우리밖에 없나 봐요." 하람 씨가 우산을 접으며 말했다. 다은 씨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없어야 좋은 그림이 나온다.
방송실, 낡은 마이크와 지워진 이름
두 사람은 본관 2층 방송실로 향했다. 낡은 마이크 스탠드와 스피커, 먼지 쌓인 앰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채널 시청자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 있는 촬영 포인트였다.
앰프 옆 선반에는 코팅이 벗겨진 명렬표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학년, 반, 번호, 이름이 나란히 적힌 표. 다은 씨는 카메라를 가까이 대고 훑다가 멈칫했다.
한 자리만 이름이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수정액을 한 번 바른 게 아니라, 몇 번이고 덧칠한 흔적이었다. 두껍게 뭉친 하얀 얼룩 위로, 지우다 만 글자의 끝획 하나가 희미하게 비쳤다.
"이 번호만 왜 이렇게 지웠지." 하람 씨가 손전등을 비추며 중얼거렸다. 다은 씨는 별생각 없이 줌으로 그 부분을 확대해 찍었다.
끊긴 지 오래인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
명렬표를 촬영하고 나서, 다은 씨는 앰프 전원 버튼을 형식적으로 눌러보았다. 전기가 끊긴 지 오래인 건물이었다. 당연히 아무 반응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스피커에서 낮은 노이즈가 지지직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굳었다. 하람 씨가 카메라를 든 손을 그대로 멈췄다.
노이즈 사이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학교 하교종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조회 시간 방송 특유의 딱딱한 안내 음성.
"지금부터 출석을 확인하겠습니다."
다은 씨는 자기도 모르게 하람 씨의 팔을 붙잡았다.
몇 번, 어디 있니
방송은 옛날 조회 시간처럼 번호를 하나씩 불렀다.
"1번."
"2번."
"3번."
번호가 불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 대답하듯 아주 작은 잡음이 따라붙었다. 다은 씨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카메라를 끄지 못했다.
그러다 방송이 어떤 번호에서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1초, 2초, 5초.
스피커 너머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어디 있니."
하람 씨가 다은 씨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소리조차 죽였다. 빗소리만 창밖에서 세차게 들려왔다.
몇 초 뒤, 방송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번호로 넘어갔다. 두 사람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영상 속 작은 그림자
나중에야 다은 씨는 깨달았다. 방송이 멈췄던 그 번호가, 방송실 명렬표에서 수정액으로 몇 번이고 지워져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는 것을.
두 사람은 더 촬영을 이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장비를 챙겨 계단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람 씨가 촬영 종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 뷰파인더 한구석에 비친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화면을 다시 돌려봤다. 스피커 바로 옆, 어두운 구석에 작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옛날식 교복을 입은, 체구가 작은 형체였다. 고개는 살짝 숙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두 사람 쪽을 향해 있었다.
두 사람이 방송실에 있는 내내, 그 구석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점호
다은 씨와 하람 씨는 그대로 뛰다시피 계단을 내려가 폐분교를 빠져나왔다. 빗속을 가로질러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다은 씨는 가끔,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각에 휴대폰에서 낯선 알림음을 듣는다. 오래된 학교 종소리와 똑 닮은 소리다. 확인해 보면 아무 알림도 와 있지 않다.
그리고 며칠에 한 번씩, 같은 꿈을 꾼다.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고, 스피커에서 자신의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는 꿈. 그 꿈속에서 다은 씨는 항상, 지워진 그 번호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에서 깬다.
다만 요즘 들어, 그 번호가 몇 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