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에 쫓기던 늦은 실측
서른두 살의 감정평가사 한지연 씨(가명, 32세)는 법원 경매에 넘어간 폐업 워터파크 '블루라군' 부지의 자산가치 평가를 맡았다. 경매 마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현장 실측과 사진 촬영을 서둘러 마쳐야 했다.
건물은 3년 전 문을 닫은 뒤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정문 셔터를 올리고 들어서자, 물기 밴 콘크리트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한지연 씨는 실측할 때마다 치수와 관찰 내용을 음성메모 앱에 구술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중에 보고서를 쓸 때 사진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디테일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메인 풀 입구, 폭 약 25미터. 타일 상태 양호. 벽면에 옛 수위 자국 다수 확인."
오후 늦게 시작한 실측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문득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배관 소리라 여겼던 것
메인 풀 구역으로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물이 빠진 지 오래인데도 타일 줄눈 사이에는 클로라민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아래로 곰팡이와 고인 물 비린내가 옅게 섞여 올라왔다.
깨진 채광창 사이로 든 달빛이 녹조 낀 타일에 반사되어 희미한 초록빛을 만들어냈다. 텅 빈 콘크리트 수조는 발소리 하나에도 크게 울렸다.
또각. 또각. 또각.
자신의 발소리였다. 그런데 그 소리가, 한 박자 늦게 한 번 더 들려왔다.
건물 음향이 이상해서 그런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텅 빈 수조 특유의 반향일 뿐이라고.
어딘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똑, 똑, 똑. 배관이 새는 소리려니 넘겼다.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튄 순간
메인 풀에서 가장 깊은 다이빙대 쪽 실측만 남겨두고 있었다. 한지연 씨는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들고 풀 바닥 깊은 쪽 벽면을 겨눴다.
숫자가 튀었다. 5.2미터, 정상적인 수치였다. 그런데 다시 측정하자 1.1미터가 나왔다. 마치 벽과 자신 사이, 바닥 어딘가에 무언가 서 있는 것처럼.
"측정값 오류. 재측정 필요."
그녀는 구술을 멈추지 않았다. 습관이었다.
세 번째로 측정기를 겨누는데, 배수구 쪽 마른 바닥이 번들거렸다. 발자국이었다. 맨발 자국. 아이의 것처럼 작은 발자국.
물이 없는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앞서 가는 젖은 발자국
한지연 씨는 손전등으로 발자국을 따라 비췄다. 발자국은 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다이빙대 아래 깊은 쪽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짐을 챙기려 몇 걸음 돌아섰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발자국이 늘어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없던 자리에.
그리고 그 발자국은, 항상 그녀보다 딱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배수구 쪽에서 찰박, 하는 소리가 났다. 물이 없는데도.
실측은 내일 마저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도 발은 자꾸 다이빙대 쪽으로 향했다.
다이빙대 아래 웅크린 것
손전등 불빛이 풀 바닥 가장 깊은 곳을 훑었다.
거기, 웅크리고 있었다.
검고 젖은 형체였다. 사람 크기보다 작았다. 등을 둥글게 말고, 물이 없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한지연 씨는 숨을 멈췄다. 뒷걸음질 쳤다.
손전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물 튀는 소리가 들렸다. 첨벙. 물이 없는 풀에서.
그리고 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킥킥거리는, 짧고 높은 웃음소리.
한지연 씨는 뒤돌아 뛰었다. 미끌거리는 타일 바닥에 몇 번이나 발이 미끄러졌다. 출입구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재생한 녹음 파일
다음 날, 한지연 씨는 그 부지에 다시 가지 않았다. 남은 실측은 동료에게 부탁했다.
보고서를 정리하던 중, 그녀는 전날의 음성메모 파일을 재생했다. 자신이 구술한 치수를 옮겨 적기 위해서였다.
"메인 풀 입구, 폭 약 25미터..."
익숙한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잠시 후, 정적이 흐르던 구간에서 뭔가가 섞여 있었다.
작게, 아주 작게. 아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뒤로, 그녀가 조금 전 구술했던 치수를 그대로 따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5.2미터... 1.1미터..."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어리고, 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하게 갈라진 목소리였다.
한지연 씨는 그 파일을 지우지 못했다. 지금도 휴대폰 안에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블루라군 부지는 결국 경매에서 유찰되었다. 그리고 비 오는 날이면, 한지연 씨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 문득 옅은 소독약 냄새를 맡는다.
아무도 그 냄새의 정체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워터파크, 인물이나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