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는 언덕
강원도 어느 소도시 외곽에는 오래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적요언덕"이라 부르며 피해 다니는 야산이 있었다. 정식 지명은 따로 있었지만, 마을 사람 누구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언덕 중턱에는 오래된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근처에는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거긴 옛날에 큰 사고가 있었던 자리야. 돌 밑에 뭐가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몰라. 만지면 큰일 난다."
한지훈 씨(가명, 29세)는 그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지만 서른을 앞둔 지금, 그런 이야기는 그저 시골 마을의 흔한 미신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작년 늦가을, 고향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적요언덕에 아직도 그 돌무더기가 있나 궁금하다"는 말을 꺼냈다. 술기운을 빌려 다섯 명이 손전등 하나씩을 들고 야산을 올랐다. 지훈 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걸었다.
손끝에 닿았던 차가운 것
언덕 중턱, 돌무더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회색 돌들이 무릎 높이로 쌓여 있었고, 그 틈새로 무언가 하얗게 삐져나와 있는 것이 손전등 불빛에 비쳤다.
"저게 뭐야?"
친구 하나가 물었지만 아무도 선뜻 다가가지 않았다. 지훈 씨는 웃으며 돌 틈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매끈하고, 단단하고, 겨울 강물보다 차가운 감촉이었다.
돌을 하나 들어내자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 손가락뼈처럼 보이는 하얀 조각이었다. 지훈 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뗐지만, 이미 손끝은 한참 동안 그 서늘한 감촉을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기겁하며 산을 뛰어 내려갔다. 지훈 씨도 뒤따라 내려왔지만, 그날 밤부터 뒷목 아래, 정확히 목덜미와 어깨가 만나는 지점이 뻐근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뒷골이 당기던 밤들
처음에는 단순한 근육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이상한 방향으로 번져갔다.
한 달 사이 지훈 씨의 체중은 8킬로그램이 빠졌다. 밥을 평소만큼 먹는데도 몸은 계속 말라갔다. 아내 오세영 씨(가명, 27세)는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더 이상한 건 꿈이었다. 지훈 씨는 거의 매일 밤 낯선 꿈을 꾸었고, 꿈에서 본 장면이 며칠 뒤 정확히 현실에서 일어났다. 옆집 개가 죽는 날짜, 회사 동료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심지어 뉴스에 나올 사건의 세부 내용까지.
"여보, 나 어제 꿈에서 당신 손에 반지 낀 거 봤어. 그것도 우리 결혼반지가 아니라 다른 반지."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반지."
"몰라. 근데 그 꿈 꾸고 나면 꼭 뒷골이 당겨. 어제도 그랬어."
세영 씨는 남편이 밤마다 잠꼬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도 알아챘다. 평소 지훈 씨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훨씬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휴대폰 속에 담긴 것
세영 씨는 결국 남편이 잠든 모습을 몰래 촬영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병원에 가져가 보여줄 증거가 될까 해서였다.
사흘째 되던 밤, 세영 씨는 촬영 중이던 휴대폰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화면 속 지훈 씨의 몸이 침대 위에서 활처럼 휘어지더니, 두 팔이 등 뒤로 완전히 꺾인 자세로 굳어버린 것이다. 사람의 관절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각도였다.
세영 씨는 그 영상을 인터넷의 한 미스터리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게 뭔지 아시는 분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영상은 순식간에 퍼졌고, 수많은 무속인과 연구자들이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건 흔히 아는 빙의 증상이 아닙니다."
"동작이 너무 낯섭니다. 사람도, 짐승도, 제가 아는 어떤 잡귀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이건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허튼굿이 벌어진 밤
결국 세영 씨는 지역에서 용하다는 무속인을 수소문해 집으로 불렀다. 무속인은 지훈 씨를 보자마자 안색이 굳었다.
"이건 사람도 잡귀도 아니야. 산에서, 그것도 오래 묻혀 있던 것에서 올라온 거야."
굿이 시작되자 지훈 씨는 눈을 뒤집고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방울 소리와 장구 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몸은 점점 더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 지훈 씨는 벌떡 일어나 무속인을 향해 고개를 90도 가까이 꺾은 채로 응시했다. 그러고는 세영 씨조차 처음 듣는, 남편의 것이 아닌 목소리로 말했다.
"돌려놔. 원래 있던 자리로."
무속인은 결국 굿을 끝맺지 못했다.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대신 지훈 씨의 몸에 부적을 붙이고 손목에 붉은 실을 묶어주었다.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지금도 이어지는 예지몽
그날 이후 지훈 씨의 뒷골 통증은 조금 가라앉았다. 체중도 서서히 돌아왔다. 하지만 예지몽은 멈추지 않았다.
세영 씨는 요즘도 남편이 자다가 중얼거리는 날짜를 몰래 수첩에 적어둔다. 그중 몇 개는 이미 지나갔고, 지나간 날짜마다 어김없이 크고 작은 사고 소식이 뒤따랐다.
수첩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짜가 세 개 남아 있다. 세영 씨는 그 날짜들이 다가올 때마다, 남편의 뒷목을 조용히 짚어본다. 아직은 따뜻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차가워질지, 그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남편이 잠결에 손끝을 비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세영 씨는 그 서늘했던 돌무더기의 감촉을 떠올린다. 아직 언덕의 그 자리에, 무언가는 여전히 묻혀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