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원짜리 인형
올해 34세인 박 씨(가명)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습니다. 출퇴근에 가사에 육아까지, 하루하루가 빠듯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장난감 하나도 새 제품보다는 중고로 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난 5월의 일입니다.
당근마켓을 뒤지다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래된 패브릭 인형이었는데, 사진 속 인형은 낡았지만 형태가 단정했습니다. 토끼 모양이었고, 귀 부분이 약간 닳았을 뿐 솔기도 멀쩡했습니다. 가격은 오백 원.
박 씨는 별생각 없이 연락을 넣었습니다.
판매자는 4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고, 거래 내내 조용하고 차분했습니다. 아파트 로비에서 인형을 건네받을 때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애들이 좋아하면 좋겠네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박 씨는 집에 돌아와 인형을 큰아이 방에 두었습니다. 다섯 살배기 딸이 인형을 보자마자 안아 들었습니다.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토리야."
밤의 대화
인형을 들인 지 사흘째 되던 밤이었습니다.
박 씨는 새벽 두 시가 넘어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내일 아이들 도시락 재료를 확인하고, 한동안 뒤척이다 눈을 감은 참이었습니다.
그때 딸아이 방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박 씨는 처음에는 잠꼬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리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이어지고, 멈추고, 다시 이어지는 패턴이었습니다.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박 씨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문틈으로 딸아이 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 무릎 위에 토끼 인형을 올려놓은 채로.
그리고 인형을 향해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응, 알아. 응. 그래도 괜찮아."
박 씨는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졸린 눈이 아니었습니다. 또렷했습니다.
"엄마, 할머니가 걱정된대."
박 씨의 등이 싸늘해졌습니다.
양가 할머니는 모두 살아 계셨습니다.
판매자에게 건 전화
다음 날 아침 박 씨는 판매자에게 연락을 넣었습니다. 인형에 대해 물어보려 했습니다. 아이가 잠꼬대를 한 것일 수도 있었고, 별게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왠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판매자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유품이에요. 지난달에 돌아가셨거든요."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인형... 어머니가 젊었을 때부터 가지고 계셨던 거라서요. 오래됐어요. 버리기는 좀 그렇고 해서."
박 씨는 전화를 끊고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할머니.
아이가 밤새 대화를 나눈 '할머니'.
CCTV에 찍힌 것
박 씨는 그날 밤 아이 방에 공기청정기 겸 홈캠을 설치했습니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가 지나자마자 알림이 왔습니다.
동작이 감지되었다는 알림이었습니다.
박 씨는 스마트폰을 들어 영상을 확인했습니다.
아이는 자고 있었습니다.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그런데 아이 침대 옆, 창문과 벽 사이 모서리에.
흐릿한 형체가 서 있었습니다.
사람의 윤곽이었습니다. 크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고 굽어 있는, 노인처럼 보이는 실루엣이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었지만, 분명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형체는 아이 침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달려가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토끼 인형을 꼭 쥔 채 자고 있었습니다.
영상을 다시 돌려보았습니다. 형체는 총 열일곱 분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냥 사라졌습니다. 문도 열리지 않았고, 창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없어졌습니다.
돌아오는 인형
박 씨는 인형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 한구석에 두고 왔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날 밤, 딸아이 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토리가 침대 위에 있었습니다.
박 씨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토리 어디서 났어?"
아이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할머니가 가져다줬어."
박 씨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인형을 들고 판매자에게 찾아갔습니다.
판매자는 인형을 보자 잠시 굳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손녀가 생기길 바라셨거든요. 이 인형을 손녀한테 주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박 씨의 딸은 다섯 살이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밤
박 씨는 인형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판매자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토끼 인형은 딸아이 방에 있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밤마다 인형과 대화합니다. 박 씨는 이제 방문을 열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확인합니다.
CCTV 영상을.
그 형체는 여전히 매일 밤 두 시가 넘으면 나타납니다. 아이 침대 옆 모서리에 서서,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사라집니다.
박 씨가 무서운 건 그 형체가 아닙니다.
무서운 것은, 아이가 그 존재 옆에서 늘 평온하게 잠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중고거래로 타인의 유품을 구입할 때는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