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낡은 장롱을 정리하던 날
조은지 씨(가명, 33세)는 지난달 세상을 떠난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러 오래된 시골집을 찾았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이모의 유일한 가족은 조카인 은지 씨뿐이었다. 장례를 마친 지 일주일, 그녀는 혼자서 이모가 평생을 살아온 낡은 집의 안방 문을 열었다.
방 한쪽에는 손때 묻은 자개장롱이 놓여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나프탈렌 냄새와 눅눅한 습기 냄새가 한꺼번에 훅 끼쳐왔다. 은지 씨는 옷가지를 하나씩 꺼내 정리용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맨 아래 서랍을 열었을 때, 옷감 사이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손끝에 닿았다. 낡은 벨벳 주머니였다. 끈을 풀자 안에서 작고 검게 변색된 은반지 하나가 나왔다. 반지 안쪽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가느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이모의 물건 중 이렇게 겹겹이 싸매어 숨겨둔 건 이 반지 하나뿐이었다. 은지 씨는 별생각 없이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워 보았다.
차가웠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딱 맞았다.
반지를 낀 뒤로 이어진 것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국도에서 은지 씨는 하마터면 큰 사고를 낼 뻔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다 차가 갓길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심장이 오래도록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발목이 심하게 삐끗해 며칠을 절뚝거려야 했다. 그 주 안에 회사에서는 실수로 중요한 파일을 통째로 날려버렸고, 냉장고 문에 손가락이 끼어 손톱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 겹친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반지를 낀 그 순간부터 무언가 그녀 주위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 같았다.
문득 반지를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지 씨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려 했다.
빠지지 않았다.
비누 거품을 묻히고, 얼음으로 손가락을 식혀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반지는 마디를 넘어오지 않았다. 손가락은 붓지도 않았는데, 마치 반지가 스스로 살에 파고든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랍 안쪽에서 나온 이모의 쪽지
일주일째 되던 밤, 은지 씨는 다시 이모의 집을 찾았다. 반지가 나왔던 그 서랍을 샅샅이 뒤졌다. 서랍 안쪽 깊숙한 틈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이모의 필체였다.
"이 반지를 낀 사람에게. 나는 삼십 년을 이것과 함께 살았다. 빼려 해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버려도 소용없다. 이것은 낀 사람을 따라간다. 주인이 아니라, 손가락을 따라간다."
은지 씨는 손이 떨렸다. 쪽지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끝내 누구에게도 넘기지 못했다. 넘기는 순간, 그 사람에게 이 불운을 떠넘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평생 혼자 견뎠다. 네가 만약 이것을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그 값을 다 치른 뒤일 것이다."
은지 씨는 그제야 이모가 평생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고, 사십 대에 한쪽 눈 시력을 잃었으며, 두 번이나 크게 화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가족들은 그저 이모의 팔자가 사납다고만 했다.
이모는 반지를 빼지 못한 채,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넘기지 못한 채, 홀로 삼십 년을 견뎌온 것이었다.
빼도 끝나지 않는 이유
은지 씨는 인터넷을 뒤지고, 오래된 민속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흩어져 있었다. 저주가 걸린 물건 중 일부는 소유자가 아니라 몸에 지닌 사람, 특히 살갗에 직접 닿은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버리거나 없애도 저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물건이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혹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뿐이다. 오직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스스로 원해서 몸에 지녀야만, 저주는 비로소 옮겨간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넘기지 않으면 자신이 평생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반지를 끼워 넘긴다는 건, 그 사람의 삶에 이 불운을 그대로 떠안기는 일이었다.
은지 씨는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모처럼 삼십 년을 이렇게 살 자신도 없었다.
그날 밤, 은지 씨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반지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손가락 마디를 따라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금도 은지 씨의 왼손 약지에는 그 반지가 끼워져 있다. 병원에서도, 금은방에서도 빼낼 방법을 찾지 못했다.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사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크지는 않지만, 멈추지도 않는다. 계단에서, 부엌칼 앞에서, 횡단보도 위에서, 늘 아슬아슬하게 무언가를 비켜간다.
은지 씨는 이모의 쪽지를 서랍 깊숙이 다시 넣어두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 반지에 대해 먼저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그 반지를 궁금해하며 먼저 손을 내밀지만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제보된 소재를 바탕으로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장소나 인물,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