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연습실에는 다섯 명이 있었다
박○○ 씨(가명, 23세)는 서울 소재 대학의 뮤지컬 동아리 '막이 오르면'의 부대표였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동아리 방이 아닌 학생 건물 지하 1층 연습실을 빌려 합창 파트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그날은 5월 말 수요일, 저녁 7시였습니다. 그날 연습에는 박 씨와 동기 이○○, 김○○, 그리고 1학년 후배 정○○, 오○○까지 총 다섯 명이 참석했습니다.
여섯 번째 멤버인 후배 한○○(가명, 20세)은 연습 시작 두 시간 전에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선배들, 오늘 열이 심해서 병원 가야 할 것 같아요. 연습 못 갈 것 같아요 ㅠㅠ"
모두 "빨리 나아"라고 답했고, 연습은 여섯 명이 아닌 다섯 명으로 시작됐습니다.
연습실은 창문이 없는 지하 공간이었습니다. 형광등 두 개가 켜져 있었고, 벽 한쪽에는 전신 거울이 붙어 있었습니다. 피아노 한 대, 스피커, 그리고 접이식 의자 몇 개. 평소와 다름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섯 명은 악보를 폈습니다.
문이 열렸다
연습이 시작된 지 약 4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연습실 문이 열렸습니다.
박 씨는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연습실 복도 쪽 문은 잠금장치가 없어서 가끔 다른 동아리 학생이 문을 두드리거나 열어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박 씨가 문 쪽을 돌아봤을 때, 한○○가 서 있었습니다.
분명 한○○였습니다. 평소에 즐겨 입던 옅은 베이지색 후드 집업을 입고, 왼쪽 어깨에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반쯤 묶어 올린 상태였습니다. 한○○가 항상 하던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한○○야? 몸은?"
박 씨가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한○○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고개를 살짝 돌리며 연습실 안쪽을 한 번 훑었습니다. 다섯 명의 얼굴을 차례로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없네."
그것뿐이었습니다.
한○○는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문 옆 화장실 쪽 복도로 사라졌습니다.
연습실 안은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방금 한○○ 맞지?" 동기 이 씨가 먼저 물었습니다.
"응, 나도 봤어." 김 씨가 대답했습니다.
다섯 명 모두 봤습니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박 씨는 악보를 의자에 내려놓고 연습실 문을 열었습니다.
복도는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지하라 환기가 잘 안 돼서 항상 약간 눅눅한 냄새가 나는 복도였습니다.
화장실은 연습실에서 복도를 따라 여덟 걸음 거리에 있었습니다. 박 씨는 화장실 문을 밀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칸이 두 개인 여자 화장실이었는데, 두 칸 모두 문이 열려 있었고,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세면대 옆 창문 틈에서 희미한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만 났습니다.
박 씨는 복도를 다시 살폈습니다. 계단 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꺾여 있었고, 그쪽으로 가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40초 안에 한○○가 복도를 지나 건물 밖까지 나갔다는 건 말이 안 됐습니다.
"한○○야!" 박 씨가 복도에 대고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박 씨는 연습실로 돌아왔습니다. 다섯 명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박 씨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한○○였습니다.
"선배, 죄송해요. 저 지금 병원 대기 중인데 대기 번호가 아직 많이 남았어요. 오늘 연습 끝날 때까지 못 갈 것 같아요."
박 씨의 손이 굳어버렸습니다.
"...지금 어디야?"
"어? 저요? 학교 앞 내과요. 왜요, 선배?"
CCTV에 남겨진 것
연습이 끝난 뒤, 박 씨는 동기 이 씨와 함께 학생처에 찾아가 지하 연습실 복도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담당 직원은 처음엔 영상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박 씨가 "저희 후배가 지하 복도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봤다"고 설명하자, 직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모니터를 돌려주었습니다.
저녁 7시 40분부터 7시 45분 구간.
박 씨는 모니터를 들여다봤습니다.
연습실 문이 열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을 연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복도 CCTV에는 그 시간대에 아무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연습실 문이 저절로 열렸다가, 1분 후 저절로 닫혔을 뿐이었습니다.
직원이 말했습니다. "음... 이 구간, 사실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화면이 이 부분만 살짝 지직거리더라고요."
박 씨가 화면을 다시 봤습니다. 직원의 말대로 그 1분 구간의 영상이 다른 구간보다 약간 흐릿하고, 화면 모서리에 희미한 잡음이 낀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신호 간섭이 일어난 것처럼.
같은 시각, 학교 앞 내과에서는 한○○가 진료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동아리 채팅방을 보고 있었습니다.
없네, 라는 말의 의미
박 씨가 이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소름이 끼치는 부분은 CCTV도, 화장실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이 남긴 말. "없네."
박 씨는 처음에는 그냥 연습실 안을 보고 한마디 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했습니다. 그것은 연습실 안을 훑으며 다섯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없네"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요.
한○○ 본인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박 씨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한○○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배, 사실 저 그날 병원에서 이상한 경험 했어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중, 잠깐 졸았다고 합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태에서 한○○는 어두운 복도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근데 선배, 제가 찾던 게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박 씨와 그날 연습실에 있던 다섯 명은 이후에도 간혹 그날 일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부 기억이 흐릿해지지만, 다들 하나같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연습실 안을 훑던 눈빛.
한○○의 눈을 하고 있었지만, 한○○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부재를 확인하는 눈이었다고.
동기 이 씨는 말합니다.
"그게 제일 무서웠어. 우릴 보는 게 아니었거든. 우리 사이에 없는 누군가를 보고 있었어."
그날 연습실에 있었던 다섯 명. 그리고 병원 대기실에 있었던 한○○.
그것이 찾던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창작 각색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