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녹음실
박○○ 씨(가명, 34세)는 서울 합정동의 한 소규모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스튜디오는 지하 2층에 위치했고, 방음 처리가 완벽히 되어 있어 바깥의 소리는 물론, 자신의 목소리조차 메아리 없이 흡수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날은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의뢰받은 앨범 믹싱 마감이 다음 날 오전이었고, 박 씨는 혼자 남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오후 11시쯤 모두 퇴근했습니다. 건물 전체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박 씨는 스튜디오 입구를 잠갔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헤드폰을 끼고 파형을 조정하다 눈이 피로해진 박 씨는 잠시 헤드폰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정면 컨트롤 패널 위쪽, 녹음 부스와 컨트롤 룸을 가르는 방음 강화유리를 바라봤습니다.
유리에 비친 것
방음창은 거울처럼 방 안을 반사했습니다. 박 씨 자신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조명은 컨트롤 룸 좌측 간접조명 하나만 켜 놓은 상태였고, 나머지는 꺼져 있었습니다.
박 씨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멈췄습니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뒤편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 서 있었습니다.
처음엔 피로로 인한 착시인 줄 알았습니다. 눈을 비볐습니다. 다시 봤습니다. 여전히 있었습니다. 유리에 반사된 이미지였지만, 그것이 서 있는 위치는 박 씨가 앉아 있는 의자 뒤쪽 약 1.5미터 지점으로 보였습니다.
형체는 사람의 실루엣이었습니다. 키는 컸습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벽. 그리고 어둠. 그뿐이었습니다.
다시 유리를 봤습니다.
형체는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유리와 현실 사이
박 씨는 그 순간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려 했습니다. 장시간 모니터 작업 후의 잔상. 심리적 피로. 하지만 그것은 계속 유리 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의 고개가 박 씨 쪽으로, 아주 천천히, 기울어졌습니다.
박 씨는 비명 없이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튜디오가 완전 방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목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스탠드 조명을 켰습니다. 형체는 조명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컨트롤 룸에는 박 씨밖에 없었습니다. 녹음 부스를 열어봤습니다. 마이크 스탠드 하나뿐이었습니다.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습니다. 박 씨가 잠근 그대로.
오래된 녹음실의 기억
박 씨는 다음 날 오전, 스튜디오 대표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그날 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었냐고.
대표는 잠시 표정이 굳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혼자 야간 작업하지 말랬잖아요."
나중에 알게 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스튜디오가 입주하기 전, 해당 공간은 다른 녹음실이었다는 것. 십 년 전 야간 작업을 하던 엔지니어 한 명이 그 방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는 것. 원인 미상이었습니다.
박 씨는 지금도 그 스튜디오에서 일합니다.
하지만 야간 혼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믹싱 중에 헤드폰을 벗고 유리를 봅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 이야기는 음향 업계에서 전해 내려오는 실화 체험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공포 이야기입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