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아무도 없는 시간
김도연 씨(가명, 32세)는 회사 근처 헬스장의 새벽 5시 회원권을 쓰고 있었다. 출근 전 한 시간, 텅 빈 운동실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게 이 시간대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헬스장은 카드 대신 안면인식 게이트로 출입을 관리했다. 얼굴을 인식기에 대면 "김도연 님, 입장하셨습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방식이었다.
도연 씨는 3년째 같은 시간, 같은 루틴으로 이 헬스장을 다니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였다.
이상해진 안면인식
지난달부터 인식기가 이상해졌다. 얼굴을 대면 가끔 "이미 등록된 얼굴입니다. 재등록이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프런트 직원은 카메라 렌즈 노후화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도연 씨도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등록했다.
그런데 그 주부터, 출입 기록 앱에 이상한 항목이 남기 시작했다. 도연 씨가 헬스장에 가지 않은 날에도 "김도연 님 입장 - 04:52", "김도연 님 퇴장 - 05:31" 같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도연 씨는 처음엔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이미 다녀간 사람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5시 20분에 헬스장에 도착했다. 인식기에 얼굴을 대자 문이 열렸다. 그런데 앱을 열어보니 출입 기록에 이미 "김도연 님 입장 - 05:04", "김도연 님 퇴장 - 05:47"이 찍혀 있었다.
05:47.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각이었다.
탈의실 사물함은 도연 씨가 늘 쓰는 자리였다. 문을 열자 늘 걸어두던 자리에 낯선 운동복 한 벌이 땀에 젖은 채 걸려 있었다. 도연 씨의 것과 똑같은 색, 똑같은 브랜드였다.
텅 빈 운동실에서
운동실에는 아무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러닝머신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누군가 뛰고 있는 소리.
도연 씨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러닝머신 위에 누군가 뛰고 있었다.
도연 씨였다. 얼굴도, 옷도, 심지어 머리를 묶은 방식까지 똑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뛰고 있었다.
그 사람이 뛰다 말고 고개를 돌려 도연 씨를 바라봤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웃었다.
인식기가 다시 음성을 내보냈다.
"김도연 님, 입장하셨습니다."
지금도
도연 씨는 그날 이후 그 헬스장을 그만뒀다. 다른 지점으로 옮기고, 안면인식 대신 지문 인증을 쓰는 곳만 골라 다닌다.
그런데 얼마 전, 예전 헬스장에서 탈퇴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회원 정보란에는 여전히 도연 씨의 이름과 얼굴이 등록되어 있었고, 최근 이용 내역에는 지난주 새벽 출입 기록이 하나 더 찍혀 있었다.
도연 씨는 그 시간, 분명히 자신의 집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