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야간 산행
올해 34세인 최 씨(가명)는 매달 한 번씩 혼자 야간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낮에는 번잡하던 등산로가 밤에는 오롯이 자기만의 길이 된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조용한 산길을 걷는 것이 퇴근 후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4월 첫째 주 화요일, 최 씨는 경기도 외곽의 야트막한 산을 찾았습니다. 해발 500미터 남짓. 주말에는 등산객이 많지만 평일 밤에는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산 중턱에 작은 산장이 하나 있었고, 오래 전부터 운영해 온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최 씨는 오후 10시에 들머리를 출발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4월 중순의 봄밤 공기는 차갑지도 덥지도 않았습니다. 짙은 남색 아노락 재킷에 회색 배낭.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처음 30분은 평화로웠습니다.
앞서 걷는 사람
능선 초입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약 50미터쯤 앞에 사람이 보였습니다.
최 씨는 의아했습니다. 평일 밤 10시 반에 이 산에 오는 사람이 있다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이 자신과 똑같았습니다. 짙은 남색 아노락 재킷. 회색 배낭. 키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걸음걸이도. 최 씨 특유의 걸음걸이, 왼발을 살짝 더 많이 여는 버릇. 그것이 그대로 앞에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최 씨는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재킷은 흔한 모델이었으니까요.
"저기요!" 하고 불렀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소리가 안 들렸나 싶어 더 크게 불렀습니다. 밤 산에서 뒤에서 소리치면 보통 누구든 돌아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돌아보지도,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천천히, 같은 속도로 걸어갔습니다.
최 씨는 조금 빠르게 걸어 따라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빠르게 걸으면 앞의 그것도 빠르게 걸었습니다. 10미터까지 가까워지면 다시 50미터로 벌어졌습니다.
같은 속도. 같은 걸음걸이. 절대 돌아보지 않는 것.
돌아보지 않는 나
정상까지 1킬로미터가 남은 지점에서 최 씨는 멈춰섰습니다.
앞의 그것도 멈췄습니다. 동시에.
최 씨가 다시 걷자, 그것도 다시 걸었습니다. 최 씨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50미터 앞에서 그것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최 씨는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앞의 그것을 향해 빛을 비췄습니다. 강한 빔이 그것에 닿았습니다.
그것은 멈췄습니다.
처음으로 걸음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마치 삐걱거리는 인형처럼, 몸을 최 씨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최 씨는 그 순간 손전등을 껐습니다.
본능이었습니다.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온몸이 알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보는 순간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최 씨는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발자국 소리. 같은 박자. 같은 간격.
산장 노인의 말
최 씨는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었습니다. 산 중턱의 산장에 불빛이 보였을 때 그는 거의 울음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노인이 나왔습니다.
최 씨가 앞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봤다고 말하자, 노인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거 돌아봤어요?"
최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거의 돌아볼 뻔했지만 껐다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잘했어요. 이 산에는 오래 전부터 그런 게 있어요. 자기 모습을 하고 앞서 걷는 것. 옛날에는 '길짐승'이라고 불렀어요. 사람을 보여서 따라오게 만들고, 결국 길을 잃게 하거나..."
노인은 말을 멈췄습니다.
"아니면 그것이 돌아봤을 때 눈이 마주치면, 그다음부터는..."
또 멈췄습니다.
"그다음부터는요?" 최 씨가 물었습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냥 밤에는 이 산 오지 마요. 봄철에는 특히."
아직도 그날 밤
최 씨는 그 뒤로 야간 산행을 완전히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산에서 뛰어 내려오던 중 헤드랜턴이 잠깐 꺼졌다 켜졌을 때, 옆에 있던 나무에 뭔가가 닿은 자국이 있었습니다. 마치 손으로 나무를 짚으며 달린 것 같은, 긁힌 자국들.
최 씨는 그날 밤 나무를 짚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너 지난주 화요일 밤에 어디 있었어?"
최 씨가 왜 묻냐고 하자, 친구가 사진 하나를 보냈습니다. 그 산 인근 도로의 가로등 아래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친구가 우연히 드라이브하다 찍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속, 가로등 아래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짙은 남색 아노락 재킷. 회색 배낭.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최 씨는 그날 밤 산을 내려온 뒤 곧장 차로 집에 갔습니다. 그 도로를 지난 기억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특정 장소를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