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있는 소품 하나
올해 34세인 최 씨(가명)는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이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였습니다. 오래된 물건에서 풍기는 빈티지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벼룩시장이나 경매 사이트를 자주 기웃거렸습니다.
작년 늦가을, 지방의 한 폐가 정리 경매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기도 외곽의 오래된 단독주택이 철거를 앞두고 내부 집기와 소품을 경매에 부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목록을 훑어보던 최 씨의 시선이 한 항목에 멈췄습니다.
유화 초상화, 1950년대 추정, 액자 포함, 상태 양호.
첨부된 사진은 흐릿했지만, 금빛 낡은 액자 속에 중년 여성이 정면을 바라보는 초상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1950~60년대 스타일의 단정한 한복 차림이었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눈동자였습니다.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했습니다.
최저 입찰가 3,000원. 최 씨는 별생각 없이 5,000원을 써냈고, 낙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물건을 수령하러 현장에 갔을 때, 경매 업체 직원이 그림을 건네주면서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이거, 원래 입찰자가 두 명 더 있었는데 둘 다 취소하셨어요. 이유는 모르겠고."
최 씨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고양이가 우는 밤
집에 돌아온 최 씨는 초상화를 거실 소파 맞은편 벽에 걸었습니다. 역시 실물로 보니 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의 기법으로 보이는 세밀한 유화였는데, 여성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방 어느 구석에서 봐도 그 눈이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최 씨는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초상화 특유의 묘한 분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틀 뒤부터 고양이가 이상해졌습니다.
최 씨가 2년째 키우는 수컷 러시안 블루 '보리'는 평소 얌전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거실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초상화가 걸린 벽 쪽을 바라보며 낮게, 끊임없이 울부짖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번이더니, 며칠이 지나자 밤마다 새벽 두세 시에 그 울음소리가 시작됐습니다.
낮고 길게 이어지는 울음. 마치 뭔가를 경고하는 것처럼.
최 씨는 동물병원에 데려갔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꿈이 시작됐습니다.
꿈속에서 최 씨는 어두운 방 한가운데 혼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초상화 속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게 그 그림 속 여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여자는 항상 팔을 뻗는 직전에 꿈이 끊겼습니다.
최 씨는 3일 연속 같은 꿈을 꿨습니다.
돌려보내라
3주가 지났을 무렵, 지인들 사이에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들이 겸 초상화를 구경하러 온 친구 박 씨는 그날 밤 귀가 중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차가 크게 파손됐습니다. 그다음 주에 최 씨 집을 방문한 직장 동료는 사흘 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이 골절됐습니다. 최 씨의 여자친구는 그림을 보고 나서 이유 모를 고열로 일주일간 앓아누웠습니다.
세 번째 사고가 난 뒤, 최 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림을 내리려고 했을 때, 액자 뒷면을 처음으로 제대로 살펴보게 됐습니다.
오래된 목재 뒷면에는 한자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자를 잘 모르는 최 씨는 사진을 찍어 번역 앱에 돌려봤습니다.
이름과 날짜. 1962년. 그리고 맨 마지막 다섯 글자.
還送 — 돌려보내라.
누가 새겼는지, 누구에게 돌려보내라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최 씨는 잠시 멈췄다가, 그림을 내리기 위해 액자를 잡아당겼습니다.
그 순간 못에 걸린 끈이 삐걱하며 기울었고, 최 씨의 손바닥이 액자 모서리에 긁혀 피가 났습니다. 작은 상처였는데, 피 한 방울이 그림 표면에 떨어졌습니다.
최 씨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그림 속 여성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처음 봤을 때와 달랐습니다. 무표정이었던 입이.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최 씨는 스스로에게 착각이라고 되뇌었습니다. 오래된 그림이니 표면이 고르지 않아서 빛에 따라 달라 보이는 거라고.
그날 밤, 집을 비운 최 씨가 외출 전 설치해둔 홈 CCTV 영상을 나중에 확인했습니다.
새벽 2시 47분.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초상화 액자가 혼자 천천히 기울었습니다. 왼쪽으로. 멈췄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마치 안에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처럼.
그러다 정자세로 돌아왔습니다.
CCTV에는 최 씨의 고양이 보리가 거실 입구에 앉아 그 장면을 내내 바라보고 있는 것도 찍혔습니다. 한 번도 울지 않은 채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
최 씨는 무속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림 사진을 보여줬더니, 무속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돌려드릴게요."
사진을 도로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무속인에게 최 씨가 물었습니다.
"왜요? 뭐가 보이세요?"
무속인은 문손잡이를 잡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이 여자, 아직 거기 있어요."
최 씨는 그 그림이 원래 있던 폐가를 수소문했습니다. 경매 업체에 확인하니, 그 건물은 이미 철거됐다고 했습니다. 1962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돌려보낼 곳이 없었습니다.
최 씨는 현재 초상화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내리기가 두렵습니다. 피가 닿은 뒤로 그림 속 여성의 표정이 확실히 달라졌고, 내릴 때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림은 지금 차 트렁크 안에 넣어뒀습니다. 집 안에는 두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어젯밤부터 차 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납니다.
긁히는 소리가.
안쪽에서.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오래된 물건을 구입할 때는 출처와 내력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