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불면증 때문이었습니다
박지현 씨(가명, 29세)는 서울 마포구의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였습니다.
이상한 일은 지난겨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밤 새벽 2시 30분. 정확하게 같은 시간에 눈이 떠졌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꿈도, 소리도 없이. 그냥 눈이 떠지고, 방 안에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습니다.
3개월이 지났습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불면증이라고 했습니다.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수면제를 먹어도 새벽 2시 30분이면 눈이 떠졌습니다.
직장 선배가 무속인 한 분을 소개해줬습니다. "예언이 정확하고 용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박 씨는 그때까지 무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강한 악령이 씌어 있습니다"
무속인 천○○ 씨(이하 천 씨)는 경기도 어딘가의 산 아래 작은 사당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고,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박 씨가 자리에 앉자마자 천 씨는 점괘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냥 박 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2시 반에 깨죠?"
박 씨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 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 강한 악령이 씌어 있어요. 이게 잘못되면 크게 다칩니다. 일반 점으론 어림없어요. 특별한 퇴마 의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됩니다. 의식에 함께할 다른 분들도 있어야 해요."
박 씨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속 제단
의식은 다음 달 보름날 밤으로 정해졌습니다.
장소는 천 씨가 직접 알려줬습니다. 강원도 어느 산 중턱,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제단이었습니다.
박 씨는 당일 저녁 7시에 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세 명이 더 와 있었습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40대 초반 남성 오○○ 씨.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거의 말이 없었습니다.
30대 여성 이○○ 씨. 손을 계속 비볐습니다.
60대 여성 강○○ 씨.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천 씨가 마지막으로 도착했습니다. 평상복 대신 흰 한복을 입고 있었고, 표정이 낮에 본 것과 달랐습니다. 훨씬 딱딱하고, 어두웠습니다.
산을 오르는 데 40분이 걸렸습니다.
제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웠습니다. 달빛조차 나뭇가지에 막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제단은 오래된 돌로 쌓여 있었고, 그 위에 박 씨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냄새. 오래되고 습한, 그러면서도 달콤한 냄새. 마치 오래된 꽃이 썩어가는 냄새 같았습니다.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천 씨가 다섯 명을 제단 주위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됩니다. 의식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어야 해요."
천 씨가 북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규칙적인 박자였습니다. 둥. 둥. 둥.
5분쯤 지났을 때부터 박자가 빨라졌습니다. 북소리 사이사이에 천 씨의 목소리가 끼어들었습니다. 낮고 길게 늘어진 소리였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박 씨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보였습니다. 검은 배경 위에 흰 형체들이. 마치 불꽃처럼 흔들리는 것들이. 하나. 둘. 셋.
형체들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때 오른쪽에서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쿵.
박 씨가 눈을 떴습니다.
오○○ 씨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하나씩 무너져 갔습니다
천 씨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천 씨는 쓰러진 오 씨를 보지도 않았습니다.
"눈 감으세요. 집중하세요."
박 씨는 눈을 다시 감으려다 멈췄습니다.
이○○ 씨가 이상했습니다. 바닥에 앉은 채로 몸이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눈은 뜨여 있는데, 초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천 씨가 알려주지 않은 말들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강○○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을 벌린 채 고개가 뒤로 꺾여 있었습니다.
세 명 중 정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 씨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천 씨, 잠깐만요. 저 사람들이..."
북소리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완전히.
침묵이 쏟아졌습니다.
무속인이 변하던 그 순간
천 씨가 박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달빛이 없는 곳이었는데, 왜인지 천 씨의 얼굴만 보였습니다. 하얗게. 너무 하얗게.
그리고 천 씨의 눈이 달랐습니다.
낮에 봤을 때는 검은 눈동자였습니다. 지금은 흰자위가 훨씬 많이 보였습니다. 마치 눈동자가 뒤로 넘어간 것처럼.
천 씨가 웃었습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입꼬리만 위로 올라간, 그러면서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그리고 천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천 씨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낮고. 두껍고. 여러 목소리가 겹쳐있는 것 같은 소리.
"악령이 씌인 건 네가 아니었어."
박 씨는 그 순간을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다리가 풀렸어요. 근데 동시에 머릿속에서 뭔가 딸깍 하는 소리가 났어요. 지금 여기 있으면 죽는다. 그냥 그 생각 하나만 남았어요."
박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천 씨가 손을 뻗었습니다.
박 씨는 달렸습니다.
산 아래로. 어둠 속으로. 넘어지면서도. 일어나면서도.
뒤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북소리였습니다. 다시 시작된.
살아서 내려온 그날 이후
박 씨는 산 아래 첫 번째 마을까지 내달렸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경찰이 제단을 확인했습니다. 쓰러졌던 세 명은 이미 없었습니다. 제단에는 재와 천 조각만 남아 있었습니다. 천 씨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 후, 강○○ 씨가 서울 모 병원 응급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탈수와 저체온증이 심했고, 산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경기도 외딴 농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오○○ 씨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천 씨는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박 씨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더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새벽 2시 30분에 눈이 떠지는 일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하지만 대신. 잠들기 직전. 귀 바로 옆에서.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립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압니다. 그 목소리가 산 위 제단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라는 것을.
악령이 씌인 건 네가 아니었어.
지금 이 순간도, 박 씨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재창작된 창작 공포 이야기입니다. 실제 사건·사고 및 특정 인물과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