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첫날, 할머니가 알려 준 대로
한 씨(가명, 34세)는 10월 10일 토요일, 오래된 빌라 2층으로 이사했습니다. 방 두 개에 욕실 하나,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대신 월세가 싼 집이었습니다. 짐을 다 들인 저녁, 한 씨는 비닐봉지에서 붉은 팥 한 되를 꺼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가 이사한 날이면 하던 일이었습니다. 팥을 방마다 한 줌씩 뿌리며 "나가라" 하고 외친 뒤, 하룻밤 그대로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 빗자루로 현관 밖까지 쓸어내는 것. 집 안에 먼저 머물던 것들을 내보내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한 씨는 미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낯선 집의 첫날이라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습니다.
안방에 한 줌. 작은방에 한 줌. 욕실에 한 줌. 모두 세 줌이었습니다. 팥알은 장판 위로 또르르 굴러갔고, 한 씨는 방마다 "나가라"를 세 번씩 외쳤습니다. 그리고 작은방 문과 장롱 문을 꼭 닫았습니다. 쓸어내는 것은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톡, 톡
그날 밤 한 씨는 안방 이불 위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어, 얇은 벽 너머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톡.
톡. 톡.
마른 알갱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았습니다. 아니, 반대였습니다. 바닥의 무언가를 하나씩 집어 올리는 소리. 톡, 하고 집어 올리면 잠시 뒤 아삭, 하고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소리는 비워 둔 작은방에서 났습니다. 한 씨는 숨을 죽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귀가 먼저 방 문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불을 켜고 나가 볼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소리는 규칙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톡. 아삭. 톡. 아삭.
한 씨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긴 채 아침까지 눈을 감지 못했습니다.
아침의 작은방
해가 들자 한 씨는 용기를 내 작은방 문을 열었습니다.
안방 장판 위의 팥은 그대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욕실 바닥의 팥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작은방 바닥에는 한 알도 없었습니다. 장판 틈과 방구석까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습니다.
작은방 창문은 안에서 잠긴 그대로였고, 방문도 어젯밤 닫아 둔 그대로였습니다. 작은방에 뿌렸던 한 줌은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방 안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한 씨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빌트인 장롱 문이 아주 조금,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분명히 꼭 닫아 둔 문이었습니다.
문틈에서 붉은 팥알 한 알이 굴러 나와 한 씨의 발끝에서 멈췄습니다.
쫓아내려던 것은 대접을 받았다
한 씨는 남은 팥을 모두 쓸어내 버렸고, 그날 이후 팥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닷새 뒤인 10월 15일 목요일 아침, 한 씨는 현관 신발장 위에 팥 한 줌이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씨가 올려 둔 적 없는 팥이었습니다. 집에 남은 팥은 한 알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마치 무엇을 놓아 달라는지 알려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팥은 또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사 온 날 한 씨가 한 일은 내보내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 있던 것에게는 첫 상차림처럼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먹여 주는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요.
한 씨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날 시장에서 팥 한 되를 다시 사 왔고, 그날부터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작은방 문 앞에 팥 한 줌을 놓아 둡니다. 안 놓으면 안방 문을 두드릴 것 같아서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팥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롱 문은 어제보다 손가락 하나만큼 더 열려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으며,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