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끝나면 시작되는 계단
이수민 씨(가명, 27세)는 낡은 5층 상가 건물에서 야간 청소 일을 한 지 8개월째였다. 건물은 지은 지 30년이 넘었고, 1층부터 4층까지는 작은 사무실과 식당이 세 들어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는 밤 11시가 되면 자동으로 멈췄다. 그 뒤로는 건물 안쪽, 폭이 좁은 비상계단을 이용해야 층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
계단은 좁고 나선형에 가까웠다. 한 층을 돌 때마다 방향이 완전히 꺾여, 계단참에 서면 방금 올라온 층도 앞으로 내려갈 층도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형광등 몇 개는 오래전에 나가버린 채 방치돼 있어서, 수민 씨는 늘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그 계단을 오갔다.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8개월을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적어도 그날 밤 전까지는.
처음 본 것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수민 씨는 4층 청소를 마치고 계단을 통해 내려오고 있었다. 3층과 2층 사이 계단참에 다다랐을 때, 저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앞서 내려가고 있었다. 어두워서 형체만 겨우 보였지만, 걸음걸이는 분명했다. 한 계단, 한 계단, 규칙적으로 내려가는 발소리.
수민 씨는 별생각 없이 속도를 맞춰 뒤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다음 계단참에서 그 형체가 문득 멈춰 섰다.
몸은 여전히 아래쪽, 계단이 이어지는 방향을 향해 서 있었다. 그런데 고개만, 천천히, 수민 씨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목이 돌아가는 속도가 이상했다. 사람이 뒤를 돌아볼 때처럼 어깨나 상체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고개만, 마치 그 자리에 고정된 축을 따라 돌아가는 것처럼, 부드럽고 느리게 움직였다.
수민 씨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개가 완전히 돌아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수민 씨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계단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하 3층, 봉인된 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수민 씨는 지하 계단 청소 순서를 맡게 됐다. 건물 지하 1층까지는 주차장으로 쓰였지만, 지하 2층과 3층은 청소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관리소장은 그 아래층은 예전에 변전실 겸 기계실로 쓰이다가, 안전 문제로 폐쇄된 뒤 십수 년째 봉인되어 있다고 했다.
지하 2층 계단참까지 내려간 수민 씨는 처음으로 그 문을 가까이서 보게 됐다. 두꺼운 철문에는 녹슨 자물쇠와 함께 '위험, 출입금지'라는 낡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문틈 아래로, 아주 희미하게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전기가 끊긴 지 오래라고 들었는데, 그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올 리 없었다. 수민 씨는 걸음을 멈추고 문틈을 들여다봤다. 빛은 일정한 밝기로 깜빡이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안쪽에서, 아주 낮은 웅웅거림이 들렸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 숨을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두 가지가 하나로 겹쳐진 밤
한 달쯤 지난 어느 밤, 수민 씨는 지하 2층 청소를 마치고 계단을 올라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계단참 위쪽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 계단, 한 계단. 그날과 똑같은 리듬.
수민 씨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계단참 바로 위에서 멈췄다.
그것은 봉인된 철문 쪽을 향해 몸을 세우고 서 있었다. 어깨도, 등도 문 쪽을 향한 채였다. 그런데 고개만, 다시 그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수민 씨를 향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철문 틈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그 형체의 옆얼굴을 어렴풋이 비췄다.
목이 완전히 돌아갔다.
얼굴이 수민 씨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
몸은 여전히, 단 한 걸음도 그쪽을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수민 씨는 그 눈을 봤다. 눈동자에 어린 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그 푸른빛과 똑같았다.
그 순간 수민 씨는 뒤돌아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몇 층을 뛰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1층 로비였고,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것
그날 이후 수민 씨는 야간 청소 일을 그만뒀다. 후임자에게는 그저 "지하 계단은 되도록 피하라"고만 전했다.
관리소장에게 지하 봉인된 공간에 대해 다시 물었을 때, 그는 오래전 그곳에서 작업자 한 명이 실종된 뒤로 아예 봉인해 버렸다는 이야기만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상은 아무도 몰랐다.
수민 씨는 지금도 가끔, 좁은 계단이나 어두운 복도를 지날 때면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확인한다. 누군가 뒤에 서 있다면, 그 몸이 정말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몸은 그대로인 채, 고개만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