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서연 씨
한서연 씨(가명, 29세)는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야근이 잦긴 했지만, 특별할 것 없는 서른 살 언저리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해 봄, 서연 씨는 이유 없는 두통과 손목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이라는 진단 외에 별다른 소견을 내놓지 못했다.
통증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연 씨는 요즘 들어 자꾸만 같은 꿈을 꿨다. 낡은 마룻바닥, 향이 타는 매캐한 냄새,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
꿈에서 깰 때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이불 속은 이상하리만치 서늘했다.
낯선 사투리로 중얼거리던 밤
어느 날 새벽, 서연 씨와 함께 사는 이지현 씨(가명, 28세)는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서연 씨가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쓰지 않는, 낯선 억양의 사투리였다.
지현 씨는 그 순간 방 안 공기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창문은 분명 닫혀 있었는데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며칠 뒤 고향 친척 모임에서 그 말투를 들은 이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거...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말투랑 똑같은데."
서연 씨는 그 사투리를 배운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서연 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날부터 서연 씨의 손버릇도 조금씩 달라졌다. 젓가락을 쥐는 방식, 걸음걸이,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까지. 아주 조금씩, 낯설어져 갔다.
몸이 스스로 거부하던 순간
가족들은 결국 근처의 한 무속인을 찾아갔다. 나이 지긋한 보살님은 서연 씨를 한번 보더니 한동안 말을 아꼈다.
"신병이 온 것 같습니다. 조상 중 누군가와 연이 닿은 듯한데... 제대로 풀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굿 날짜가 잡혔다. 신당 안에는 향이 타는 냄새와 방울 소리가 가득 찼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 비친 그림자도 함께 일렁였다.
그런데 서연 씨가 굿상 앞에 앉으려는 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두 다리가 자석에 밀리듯 뒤로 물러났다.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해졌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순식간에 굿상을 밀쳐냈다.
과일과 떡이 바닥에 쏟아졌다. 방울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연 씨의 입에서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벽 너머 어딘가에서 울리는 것처럼 낯설게 들렸다고 했다.
보살님의 표정이 굳었다.
"...이거, 쉽지 않겠네요."
서연 씨는 그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이 엎어진 뒤였다.
거울 속에서 웃고 있던 얼굴
그날 밤, 서연 씨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 속 자신이 웃고 있었다.
서연 씨는 웃지 않았다.
거울 속 표정만 반 박자 늦게, 아주 천천히 따라왔다. 눈매가 평소보다 조금 더 가늘었다. 입꼬리는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있었다.
서연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거울 속 얼굴은 다시 평범한 자신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날 이후, 서연 씨는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이어지는 것
몇 달간의 굿과 상담 끝에, 서연 씨의 증상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낯선 사투리로 잠꼬대하는 일도, 손버릇이 변하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서연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투리로 몇 마디를 내뱉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주 잠깐이지만 거울 속 표정이 반 박자 늦게 따라온다는 것을, 서연 씨 자신만은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 아닌, 여러 공포 체험담과 신병에 관한 이야기의 요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각색물입니다. 등장인물, 장소, 상황은 모두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특정 무속인, 특정 종교 활동과는 무관합니다. 신병이나 원인 모를 신체적·정신적 증상이 의심되신다면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