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심심풀이로 시작된 담력시험
이준영 씨(가명, 24세)는 대학교 동기인 박현우(가명), 정소미(가명)와 함께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딱히 없었다. 그저 차를 몰고 국도를 달리다가, 재개발이 결정된 뒤 몇 년째 방치된 아파트 단지를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낮에도 인적이 드문 동네였다. 15층짜리 아파트 다섯 동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창문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외벽은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현우가 먼저 장난스럽게 제안했다.
"여기 들어가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오기, 어때?"
준영은 내키지 않았지만, 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손전등 하나씩을 들고 1층 현관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내려가도 같은 층
계단은 예상보다 멀쩡했다. 셋은 낄낄대며 5층, 8층을 지나 10층까지 올라갔다. 문제는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10층에서 내려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미가 이상한 말을 했다.
"잠깐, 우리 방금 지나온 층 아니야?"
벽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 깨진 소화전, 녹슨 손잡이. 분명 몇 분 전에 지나쳤던 풍경이었다. 셋은 계단 숫자를 소리 내어 세며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9, 8, 7... 그런데 다음 층계참에 도착했을 때, 벽에는 또 같은 낙서가 있었다.
준영은 손전등으로 층수 표시판을 비췄다. 페인트로 적힌 숫자가 이상하게 번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었는데, 도착한 곳은 똑같은 복도였다.
발밑에서 먼지 쌓인 시멘트 바닥이 서걱거렸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복도 끝에 켜져 있던 불빛
현우가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
복도 맨 끝, 다른 집들과 달리 문틈 아래로 희미한 노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상했다. 이 아파트는 몇 년 전 이미 단전됐다고 들었다. 전기가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런데 그 문 안쪽에서는 분명 낮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같기도 했다.
소미가 준영의 팔을 붙잡았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저 집... 계속 여기 있었던 것 같아. 우리가 몇 번을 돌아도."
셋은 그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문틈 아래 불빛이 순간, 무언가에 가려진 것처럼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마치 안에서 누군가 그 앞을 지나간 것처럼.
문고리가 돌아가던 소리
현우가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 안쪽에서 달칵, 소리가 났다.
문고리가 스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셋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흥얼거리던 소리가 뚝 멈췄다. 대신 문 안쪽에서, 아주 가까이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준영은 뒷걸음질쳤다. 발끝에 무언가 걸렸다. 뒤돌아볼 틈도 없었다.
셋은 그대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어느 계단으로, 몇 층을 뛰어 내려갔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셋은 처음 들어왔던 1층 현관 앞에 쓰러지듯 서 있었다.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것
차로 돌아와 시계를 확인한 소미의 손이 떨렸다. 분명 아파트에 들어간 지 20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시계는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셋은 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준영은 가끔 그 복도의 서걱거리던 바닥 소리를 꿈에서 듣는다.
나중에 동네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 아파트는 단전된 지 벌써 6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 그 층에는 애초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호실 자체가 없었다고.
준영은 지금도 궁금하다. 그날 복도 끝에서 새어 나오던 그 노란 불빛은, 대체 무엇을 위해 켜져 있었던 걸까.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 아닌, 여러 공포 체험담의 요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각색물입니다. 등장인물, 장소, 상황은 모두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특정 장소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