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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10년 만의 동창회, 저녁에 마주친 '또 다른 나'는 웃지 않았다

10년 만의 동창회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를 만난 한지수 씨(가명, 35세). 아침엔 인사를 건네던 그것이, 저녁이 되자 방문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2026년 08월 06일 visibility 2,092 조회 NEW
10년 만의 동창회, 저녁에 마주친 '또 다른 나'는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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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동창회

한지수 씨(가명, 35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다. 장소는 고향 근처 계곡을 낀 오래된 한옥 펜션이었다. 서울에서 이렇다 할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여러 핑계로 참석을 미뤄왔지만, "이번이 열 번째"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버스에서 내려 펜션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 이른 아침 안개가 계곡을 따라 낮게 깔려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사이에서 지수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다들 살이 붙거나 머리가 성겼지만, 목소리만은 예전 그대로였다.

체크인을 하려고 로비에 들어서던 순간, 창밖으로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과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걸음걸이였다.

'설마.'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아침 햇살이 눈부셨을 뿐이라고, 지수 씨는 생각했다.

아침의 얼굴, 저녁의 얼굴

첫날 저녁 술자리에서, 마을 토박이인 동창 하나가 지나가듯 이야기를 꺼냈다.

"이 동네 어르신들, 옛날부터 '페치' 얘기 하시잖아. 자기랑 똑같이 생긴 걸 본다는 거. 근데 그게 아침에 보이면 오래 산다는 뜻이고, 저녁에 보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더라고."

다들 웃어넘겼다. 지수 씨도 소주를 홀짝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아까 로비에서 본 그 실루엣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지수 씨는 창문 너머 마당을 무심코 내다봤다. 가로등 아래, 누군가 서 있었다.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달랐다. 여유롭게, 확신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수 씨가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지수 씨를 발견한 듯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졌다.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진 사람

이튿날 아침, 동창들 사이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돌았다. 어젯밤 늦게 펜션 근처 카페에서 지수 씨를 봤다는 것이었다. 값비싼 차림으로 외제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자신을 도와줄 것 같은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지수 씨는 그 시각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동창 하나가 휴대폰 사진을 보여줬다. 흐릿했지만 분명 지수 씨의 얼굴이었다. 다만 넥타이핀이며 손목시계며, 지수 씨가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지수 씨는 그 순간 깨달았다. 저것은 자신이 될 수도 있었지만 되지 못한 삶이라는 것을. 대학 시절 놓쳤던 기회, 붙잡지 못했던 인연, 곁을 지켜주지 못했던 가족들. 그 모든 갈림길에서 반대편을 택했다면 도달했을 법한 모습이었다.

할머니뻘 되는 펜션 주인이 지수 씨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옛말에 그러더라고. 저건 귀신이 아니라, 내가 못 가진 삶을 사는 나래. 그거랑 마주 보면... 둘 중에 약한 쪽이 무너진다는 거야. 강한 척해봤자 소용없어. 진짜 약한 쪽이 사라지는 거지."

저녁이 다가올수록

동창회 마지막 날, 지수 씨는 하루 종일 붕 뜬 기분으로 지냈다. 사람들과 어울려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그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계곡 산책로에서 다시 마주쳤다. 이번엔 확실히 아침이 아니었다. 해가 뉘엿뉘엿 붉게 저물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엔 웃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지수 씨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빛이 좀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수 씨는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 짐을 챙겨 당장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끊긴 시간이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지수 씨는 알아차렸다. 방문 손잡이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마주 본 순간

문이 열렸다.

그것이 서 있었다.

같은 얼굴, 같은 키.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 지수 씨가 잃어버린, 혹은 처음부터 가져본 적 없는 확신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나는 네가 포기한 것들로 만들어졌어."

목소리는 지수 씨의 것이었다. 그러나 훨씬 단단했다.

지수 씨는 뒷걸음질 쳤다.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것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가빠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그날 이후, 사진 속에서

지수 씨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방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로, 지수 씨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됐다. 미뤄왔던 일들을 시작했고, 놓쳤던 관계를 다시 붙잡았다. 주변에서는 "사람이 갑자기 왜 저렇게 달라졌냐"고 묻곤 한다.

동창회 단체 사진을 정리하던 동창 하나가 지수 씨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마지막 날 저녁, 계곡 산책로를 배경으로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엔 지수 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사진 오른쪽 구석, 나무 그늘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실루엣 하나가 있었다. 지수 씨와 똑같은 옷을 입은.

그 실루엣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지수 씨는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그날 저녁 방에 들어온 것이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웃고 있는 자신이야말로, 그날 무너진 쪽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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