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출근길
윤서인 씨(가명, 31세)는 광고 대행사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대리였다. 회사는 사원증 카드로 출입을 통제했고, 출근 시각과 퇴근 시각이 시스템에 자동으로 기록됐다. 야근이 잦은 편이었지만, 서인 씨는 그 시스템 덕분에 자신의 근태가 명확히 남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날 아침, 서인 씨는 여느 때처럼 오전 8시 47분에 회사 정문을 통과했다. 카드 리더기에 사원증을 대자 익숙한 초록 불빛과 “삑” 소리가 울렸다.
이상한 출입기록
문제는 점심시간, 인사팀 직원이 서인 씨에게 조용히 다가와 물으면서 시작됐다. “서인 대리님, 오늘 새벽 6시 12분에도 출근하셨었어요?” 서인 씨는 그 시간엔 집에서 자고 있었다고 답했다.
인사팀 직원은 모니터를 돌려 보여줬다. 출입기록에는 오전 6시 12분, 서인 씨의 사원증 번호로 정문을 통과한 기록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8시 47분, 같은 사원증 번호로 또 한 번 출근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서인 씨는 출근한 셈이었다.
시스템 오류라 여기고 넘어갔지만, 그 뒤로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서인 씨가 출근하기 훨씬 전, 늘 6시에서 7시 사이 누군가 그녀의 사원증으로 먼저 건물에 들어와 있었다.
나보다 먼저 출근한 나
궁금증을 참지 못한 서인 씨는 보안팀에 요청해 새벽 시간대 CCTV를 확인했다. 화면 속에는 분명 자신과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다만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서인 씨는 늘 오른손으로 사원증을 태그하는데, 화면 속 그 사람은 왼손으로 태그하고 있었다. 머리를 넘기는 방향도, 가방을 메는 어깨도 반대였다.
화면 속 얼굴이 카메라 쪽으로 살짝 돌아가는 순간, 서인 씨는 숨이 턱 막혔다. 화질이 흐릿했음에도 그 얼굴은 틀림없이 자신이었다. 표정 없이, 아주 천천히 웃고 있는 자신.
회의록에 남은 낯선 필체
며칠 뒤, 서인 씨는 참석한 적 없는 회의의 회의록이 자신의 이름으로 공유 폴더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용은 실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문장 곳곳에는 서인 씨가 평소 쓰지 않는 표현들이 섞여 있었다.
동료들에게 물으니, “어제 회의 때 서인 씨가 직접 정리해서 올린 거 아니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들 그 회의에 서인 씨가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서인 씨는 사원증을 새로 발급받았다. 그런데도 출입기록의 이상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얼굴은 조금씩 회사 안 여기저기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텅 빈 사무실에서
늦은 밤, 서인 씨는 두고 온 서류를 챙기러 혼자 사무실로 향했다. 정문에서 사원증을 태그했지만, 리더기는 붉은 불빛과 함께 오류음을 냈다. 이미 사용 중인 카드입니다.
보안팀에 전화하니, 지금 서인 씨의 카드로 이미 사무실 안에 누군가 들어가 있다고 했다. 함께 CCTV를 확인했다. 화면 속, 불 꺼진 사무실 한가운데 서인 씨의 자리에만 모니터 불빛이 켜져 있었고,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화면 구석, 파티션 유리문에 비친 실루엣 하나가 있었다. 문 반대편에서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자신과 똑같은 실루엣이었다.
서인 씨가 그 자리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모니터만 켜진 채였고, 화면에는 진행 중이던 화상회의가 그대로 정지되어 있었다. 화면 속에는 서인 씨 자신의 얼굴이, 무슨 말을 하다 만 표정으로 멈춰 있었다.
“나머지는 내가 마무리할게.”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말이 회의 채팅창에 남아 있었다.
아직도 그 카드는 쓰이고 있다
서인 씨는 결국 다른 팀으로 옮겼다. 사원증 번호도 새로 바뀌었다. 하지만 가끔 옛 팀 동료들에게서 “저번에 복도에서 인사했는데 왜 못 본 척했느냐”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서인 씨는 그 시각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짚어 본다. 대부분은 알리바이가 분명하다. 다만 아주 가끔,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짧은 순간들이 있다.
혹시 최근에 누군가로부터 “저번에 만났잖아요”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던 적이 있으신지. 그 순간, 당신 대신 그 자리에 있던 건 정말 당신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