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첫날밤
올해 29세인 윤 씨(가명)는 3월 말에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15층짜리 건물의 11층. 채광이 좋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다만, 부동산 중개사가 한 가지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집이 좀 오래 비어 있었어요. 8개월. 가격이 좋은 이유가 그거예요."
윤 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 정도 조건이면 감사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이사 첫날, 정리를 마치고 새 침대에 누웠을 때 시간은 밤 11시쯤이었습니다. 피곤했지만 새 집 특유의 낯선 느낌 때문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새벽 2시 47분.
윤 씨는 눈을 떴습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가위눌림이었습니다. 윤 씨는 학창 시절에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눈만 움직일 수 있었고, 천장을 바라보며 풀리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시야가 바뀌었습니다.
천장이 아니었습니다. 윤 씨는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습니다.
거울 속의 나
분명 침대에 누워 있는데, 보이는 것은 엘리베이터 내부였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특유의 스테인리스 벽. 형광등. 층수 표시 패널.
그리고 정면에 거울이 있었습니다.
거울에 윤 씨가 비쳐 있었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잠옷 그대로. 하지만 거울 속의 윤 씨는 서 있었습니다. 실제 윤 씨는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거울 속의 자신은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버튼 패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거울 속의 윤 씨가 손을 들어 버튼을 눌렀습니다.
윤 씨는 그 버튼을 보고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B5.
이 아파트의 지하는 2층까지밖에 없었습니다. B1과 B2. 주차장으로 쓰이는 2개 층.
B5라는 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울 속의 윤 씨가 버튼을 누르자, 층수 표시판의 숫자가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1... 10... 9...
그리고 가위눌림이 풀렸습니다. 윤 씨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숨이 가빴습니다. 방 안은 평범했습니다. 이사 짐이 쌓여 있는 새 방.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강
그런데 다음 날 밤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벽 2시 47분. 가위눌림.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자신. B5 버튼.
다만, 이번에는 층수가 더 내려가 있었습니다.
전날은 11에서 시작해 9까지 내려가는 것을 보고 가위가 풀렸습니다. 이번에는 9에서 시작했습니다.
9... 8... 7... 6...
6에서 풀렸습니다.
그 다음 날. 6에서 시작.
6... 5... 4... 3...
3에서 풀렸습니다.
윤 씨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더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의 자신은 매번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 윤 씨 자신의 얼굴인데, 마치 마네킹처럼 감정이 없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거울 속의 윤 씨 뒤에 누군가가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거울 속 자신에게만 시선이 갔기 때문에. 하지만 3에서 풀린 날 밤, 분명히 보았습니다. 거울 속 윤 씨의 어깨 너머로, 엘리베이터 구석에 검은 형체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B2를 지나서
열흘째 되던 밤.
숫자가 1층을 지났습니다. B1... B2...
여기까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층이었습니다.
B2 다음, 숫자가 B3을 표시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울 속의 윤 씨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에 있던 검은 형체가 일어서 있었습니다.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 윤 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형체가, 윤 씨의 바로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의 손이 거울 속 윤 씨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B3에서 가위가 풀렸습니다.
윤 씨는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어젯밤
어젯밤이 보름째였습니다.
윤 씨는 잠을 자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 2시 47분이 되자,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감겼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잠재우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거울. 거울 속의 자신.
층수 표시판: B4.
거울 속의 윤 씨 뒤에 서 있던 검은 형체가 이제는 거울 속 윤 씨의 바로 옆에 서 있었습니다. 나란히. 마치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형체에게 얼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흐릿하지만, 형태가 잡히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윤 씨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B4... B4.5...
숫자가 소수점까지 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B4.5... B4.8... B4.9...
B5에 도착하기 직전, 가위가 풀렸습니다.
윤 씨는 식은땀에 젖은 채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새벽 2시 51분. 4분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방 안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침대 옆 벽에, 이사 올 때는 분명 없었던 작은 균열이 생겨 있었습니다. 벽지가 아래쪽으로 살짝 찢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 콘크리트가 보였습니다.
콘크리트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거친 글씨.
"B5에서 기다리고 있어."
윤 씨는 오늘 밤이 두렵습니다.
오늘 밤, 엘리베이터가 B5에 도착하면 무엇이 일어나는 걸까요.
거울 속의 윤 씨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표정 없이. 다만 어젯밤, 처음으로.
거울 속의 윤 씨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특정 장소를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수면 장애가 의심되시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