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안 좋은 일이 겹치던 봄
최윤서 씨(가명, 29세)의 집은 그해 봄부터 유독 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정리하며 어머니 혼자 두 딸을 키워온 십수 년, 그럭저럭 버텨오던 형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박순임 씨(가명, 58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뒤부터, 병원비와 함께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겹치기 시작했다.
다니던 마트에서 갑자기 계약이 끊긴 동생 최다은 씨(가명, 24세), 오래된 빌라 천장에서 시작된 누수, 그리고 좀처럼 낫지 않는 어머니의 어지럼증. 윤서 씨는 이 모든 게 그냥 나쁜 운이 겹친 것뿐이라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옆집 아주머니는 다르게 말했다.
이런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우리 언니네도 그랬는데, 보살님 뵙고 나서야 풀렸다니까.
옆집 아주머니가 소개해준 사람은 근처 오피스텔 3층에 신당을 차린 '장미보살'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어머니는 다은 씨를 데리고 그곳을 찾아갔다.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화가 미친다는 말
신당 안은 향냄새로 가득했고, 색색의 천이 벽마다 걸려 있었다. 장미보살은 다은 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이 아가씨한테 신기가 들어와 있어. 이거 그냥 두면 큰일 나. 본인도, 집안도 다 안 좋아져.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병원비 이야기를 꺼내자, 장미보살의 말투는 더 단호해졌다.
지금 돈 아까워할 때가 아니야. 신내림 안 받으면 이 집 다음 차례는 더 큰 화야. 알아서 해.
정식 비용은 삼천만 원이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협박에 가까운 그 말에 어머니는 결국 가지고 있던 돈과 대출을 끌어모아 천이백만 원을 계약금으로 건넸다. 장미보살은 나머지는 굿날 받으러 오겠다며, 날짜를 잡았다.
대충 흉내만 낸 그 밤
약속한 날, 장미보살은 신당이 아닌 윤서 씨 가족의 좁은 거실에서 굿을 하겠다고 했다. 장구 치는 사람도, 제대로 된 상차림도 없었다. 접이식 상 위에 과일 몇 개와 시든 꽃 한 다발, 그리고 낡은 방울 하나가 전부였다.
윤서 씨는 그날 밤 내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장미보살은 중얼거리듯 주문을 외우다가도 자꾸 휴대폰을 확인했고, 다은 씨의 어깨를 잡고 몇 번 흔드는 시늉만 하다가 서둘러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나머지 잔금 들어오면 그때 본 굿 마저 해줄게. 지금은 이 정도로 급한 불은 껐어.
다은 씨는 그날 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힘없이 방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장미보살은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연락이 끊긴 보살
일주일이 지나도, 이 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 신당이 있다던 오피스텔 3층은 이미 다른 사람이 세 들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 몇몇이 뒤늦게 알려준 사실은 참담했다. 비슷한 수법으로 여러 집에서 돈을 받고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소문, 그리고 그 인상착의가 장미보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
윤서 씨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본 굿을 마저 해준다던 그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절반만 하다 만 그 의식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씩 달라지던 다은
굿이 있고 삼 주쯤 지났을 무렵부터, 윤서 씨는 다은 씨에게서 미묘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고 한곳을 오래 응시했다. 한여름인데도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밤 11시가 되면 다은 씨는 항상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봤다. 뭘 보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만 답했다. 그리고 자다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는데, 평소 다은 씨의 높고 맑은 목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느 날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꽹과리 소리에 다은 씨가 갑자기 두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처음 듣는 이름을 나직이 되뇌었다.
복례야... 복례 어디 갔어...
가족 중 누구도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새벽 4시 12분, 거울 속의 다은
그날 밤, 윤서 씨는 화장실에서 나는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는 새벽 4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니, 다은 씨가 세면대 앞 거울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다은아, 뭐 해. 안 자고.
다은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부르자, 다은 씨의 몸이 천천히 윤서 씨 쪽으로 돌아섰다.
거울 속 다은은 돌아서지 않았다.
여전히 정면을 응시한 채, 세면대 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윤서 씨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눈앞의 다은과 거울 속 다은이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앞의 다은은 초점 없는 눈으로 윤서 씨를 보고 있었지만, 거울 속 다은은 낯선 표정으로, 낯선 누군가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정면을 향해 웃고 있었다.
언니 아니야. 나 복례 언니 찾아야 해.
다은 씨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분명 다은 씨의 것이었지만 다은 씨의 말투가 아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것
그날 이후 가족은 다은 씨를 데리고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장미보살을 다시 찾을 방법은 없었다. 번호는 여전히 결번이었고, 그를 안다는 사람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다은 씨는 겉보기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인다. 다시 일을 시작했고, 예전처럼 웃기도 한다.
하지만 윤서 씨는 안다. 다은 씨는 아직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잠결에 낮고 굵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른다.
복례야...
윤서 씨는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절반만 끝난 굿이, 정말 끝난 것인지도.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이야기 속 '보살'은 무속을 사칭해 금전을 갈취하는 사기 사례를 모티브로 창작된 가상의 인물이며, 정식으로 신앙과 의례를 수행하는 무속인 및 무속 신앙 자체를 폄훼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