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근무를 마친 새벽, 잠들 수 없는 시간
한서인 씨(가명, 29세)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3년째 나이트 전담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밤 10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8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그녀의 하루는 남들과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창문을 암막 커튼으로 가리고 잠드는 것이 유일한 낮의 일과였다.
문제는 늘 같은 시각에 시작됐다. 잠든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새벽 6시 17분, 서인 씨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눌림이라는 걸, 그녀는 처음부터 알았다. 매일 사람의 몸을 다루는 사람답게, 이 현상이 뇌의 각성과 몸의 마비가 어긋나 생기는 흔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무섭지 않아야 했다. 처음 몇 번은 실제로 그랬다.
처음엔 이명인 줄 알았다
가위눌림이 반복되던 두 번째 주부터, 서인 씨는 귓속에서 낮은 웅웅거림을 느꼈다. 오래 서서 근무하면 생기는 이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집에 돌아와 잠들 때만, 정확히 가위에 눌리는 그 순간에만 나타났다.
세 번째 주가 되자 웅웅거림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의 말소리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왼쪽 귀에서 누군가 낮게 무어라 속삭이는 동안, 오른쪽 귀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빠르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러 개의 라디오 채널이 동시에 틀어진 것 같았다.
서인 씨는 눈을 뜬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 눈동자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시계는 언제나 6시 17분에서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겹쳐 들리는 말들
한 달이 지나자 목소리는 셋, 넷으로 늘어났다. 어떤 목소리는 여자였고, 어떤 목소리는 아이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목소리는 남자의 낮은 톤이었다. 모두가 동시에, 서로 다른 말을, 서로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냈다.
서인 씨는 어느 밤 처음으로 한 단어를 알아들었다. "차가워." 왼쪽 귀 바로 옆에서 누군가 그렇게 속삭였다. 다음 날 밤에는 "여기, 여기예요"라는 말을 오른쪽에서 들었다. 또 다른 밤에는 "왜 안 와" 하는, 낯익은 억양의 목소리가 정수리 위쪽에서 들렸다.
그 억양이 어디서 들어본 것인지, 서인 씨는 며칠 뒤에야 깨달았다. 응급실에서 보호자 없이 실려 온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내뱉던 말들과 닮아 있었다.
귓가에 바짝 붙은 것
가위눌림이 시작된 지 두 달째 되던 날 새벽, 서인 씨는 처음으로 눈동자를 옆으로, 최대한 옆으로 굴렸다. 협탁 위 작은 손거울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고, 거기에 침대 머리맡이 비쳤다.
거울 속,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가 바짝 붙어 있었다.
사람의 상반신 실루엣이었다. 얼굴 없이, 입이 있어야 할 자리만 뚫린 검은 형체가 그녀의 귀에 입을 대듯 바짝 붙어 있었다.
형체는 하나였다. 그런데 그 하나의 검은 입에서,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었다. 수십 명이 그 좁은 입 하나를 통해 한꺼번에 말하려 다투는 것처럼.
서인 씨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형체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듯 거울 쪽을 향했다.
거울에 비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었지만, 서인 씨는 분명히 느꼈다. 그것이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 목소리들이 하던 말
가위가 풀린 순간 서인 씨는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낮에도 그 검은 형체와 겹쳐 들리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몇 주 뒤, 야간 근무 중 이송된 한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서인 씨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보호자 없이 홀로 실려 온 노인이 산소마스크 사이로 웅얼거린 말. "차가워." 정확히 그 새벽, 귓가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단어, 같은 억양이었다.
서인 씨는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목소리들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은 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의 말이, 어딘가에 쌓이고 쌓여 하나의 검은 것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매일 새벽, 그 말을 들어줄 단 한 사람을 찾아와 대신 쏟아놓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인 씨는 여전히 나이트 근무를 한다. 그리고 여전히, 새벽 6시 17분이면 눈을 뜬다. 다만 이제는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 중 낯익은 것이 섞여 있지 않은지, 조용히 확인부터 한다.
아직 병원에 있는, 살아있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아닌지.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수면 마비(가위눌림)는 실제로 존재하는 수면 현상이나, 이야기 속 초자연적 요소는 창작된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