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던 밤
이현수 씨(가명, 34세)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수도권의 한 중견 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2년 전부터 경기도의 한 빌라 2층에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해 늦가을의 어느 수요일 밤, 이 씨는 야근을 마치고 자정 무렵 귀가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자정 1시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특별한 일도, 이상한 기색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그냥 평범한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설명이 안 됩니다.
첫 번째 손
이 씨가 눈을 뜬 것은 새벽 4시 30분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눈을 떴다기보다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눈꺼풀은 겨우 반쯤 열렸고, 몸은 아무것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숨은 얕게 쉬어졌지만 팔 한 번 들어올릴 수 없었습니다.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몇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 새벽빛이 얇게 스며든 방 안은 평소와 다를 것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발목이 이상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불이 발목을 감싸고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 압박감.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불보다 훨씬 작고, 훨씬 부드럽고, 훨씬 따뜻했습니다.
무언가가 두 손으로 이 씨의 오른쪽 발목을 감싸 쥐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 씨의 심장이 박동을 두 번 건너뛰었습니다.
손이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손. 엄지와 나머지 네 손가락이 발목을 둘러싸는 형태로. 하지만 그 크기가.
아이의 손이었습니다.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두 살이나 세 살 정도의 유아가 가진 손. 손가락 하나하나가 통통하고 짧은, 그 손이 이 씨의 발목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차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온이 느껴질 만큼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습니다.
이 씨는 눈을 이불 끝 쪽으로 겨우 내렸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불 끝이 잔잔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아래, 아무것도. 하지만 발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아의 손가락이 발목 뼈를 감싸는 촉감이 선명했습니다.
이 씨는 소리를 지르려 했습니다. 목에서는 바람만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위가 풀렸습니다.
두 번째, 양팔을 잡히다
이 씨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았습니다. 발목을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방 안을 훑어봤습니다. 텅 비어 있었습니다.
식은땀이 등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환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 의학적으로 얼마든지 설명 가능한 현상. 이 씨는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누웠습니다.
새벽 4시 52분.
다시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빠르게 가위눌림을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발목은 조용했습니다.
대신.
양쪽 팔에서 느껴졌습니다.
여러 손이 동시에 이 씨의 팔을 잡고 있었습니다. 왼팔에 두 개, 오른팔에 두 개. 각각의 손이 팔뚝과 팔꿈치 위아래를 단단히 쥐고 있었습니다. 어른의 손이었습니다. 첫 번째와 달리 크기도 힘도 제대로 된. 손가락이 팔 살 속으로 꾹 파고드는 압박이 느껴졌습니다.
이 씨는 팔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팔이 침대 매트리스에 완전히 눌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이 씨는 손이 몇 개인지 세어보려 했습니다. 왼팔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두 개 이상의 손. 손가락의 굵기도, 힘도 각각 달랐습니다. 하나는 좀 가늘고 섬세하게 잡고 있었고, 또 하나는 투박하고 굵은 손가락으로 팔을 통째로 쥐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봤습니다. 팔 위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네 개의 손이 팔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목에서도 다시 느껴졌습니다. 처음보다 더 확실하게. 유아의 작은 두 손이 이 씨의 발목을 조용히 쥐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이 씨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 씨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포 때문인지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베개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 팔목과 발목을 잡은 손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잡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이지 않게. 하지만 놓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가위가 다시 풀렸습니다.
세 번째, 가슴 위로
이 씨는 이번에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온몸의 힘이 빠져서 그냥 누운 채 천장만 봤습니다. 두 번 모두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감촉은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새벽 5시 17분.
세 번째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무게였습니다.
가슴 위로 무게가 얹혔습니다.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순서대로 올라왔습니다. 첫 번째는 아주 가벼웠습니다. 1킬로그램도 안 될 것 같은 무게. 가슴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은 것 같은 형태의 압박. 유아가 기어 올라온 것 같은 무게.
두 번째가 왼쪽 갈비뼈 위에 얹혔습니다. 훨씬 가벼운 어른의 무게. 45킬로그램 안팎일 것 같은. 허리를 구부리고 앉은 것 같은 압박이 갈비뼈를 눌렀습니다.
세 번째가 오른쪽에 얹혔습니다. 묵직했습니다. 남성의 무게. 무릎을 세우고 앉은 것처럼 집중적인 압박이 오른쪽 갈비뼈와 허리 사이를 눌렀습니다.
세 개의 무게가 이 씨의 가슴과 배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습니다. 폐 안으로 공기가 절반밖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눈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슴도 배도 평평했습니다. 이불 위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숨이 막혔습니다.
그 순간 이 씨의 머릿속에 이유도 없이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가족.
이 단어가 떠오른 순간, 이 씨는 울음이 터지려 했습니다. 왜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서워서 우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 같은 것이었습니다.
발목의 유아 손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습니다.
그 순간 이 씨는 침대 위 책상 위에 있는 무언가를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몇 달 전 다녀가면서 놓고 간 작은 십자가 묵주였습니다. 이 씨는 종교가 없었지만 그냥 그게 생각났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떤 말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냥 제발, 이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세 개의 무게가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발목의 손도 사라졌습니다.
양팔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이 씨는 벌떡 일어나 불을 켰습니다. 방 안을 샅샅이 확인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도 닫혀 있었습니다.
부동산에서 알게 된 것
이 씨는 그날 이후 그 집에서 두 달을 더 살다가 이사를 나갔습니다. 이사를 결정한 뒤 부동산에 들른 자리에서 이 씨는 별 생각 없이 그 집에 대해 물었습니다.
"전에 거기 살던 분들은 왜 나갔어요?"
부동산 사장의 표정이 잠깐 굳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거기... 한 3년 전에 교통사고가 있었어요. 거기 살던 세 분이."
이 씨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세 분이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살짜리 아이."
이 씨는 그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사고는 새벽이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차에 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지금도 새벽 4시 30분 즈음이면 잠이 깹니다. 반사적으로 발목을 손으로 감쌉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항상.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불 밖으로 발을 내밀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체험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세부 사항을 변경하였습니다. 가위눌림 경험이 있으신 분은 특히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