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역, 매일 같은 시간의 환승
박서준 씨(가명, 34세)는 무역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퇴근길엔 늘 한빛선 청람역에서 환승했다. 저녁 7시 12분, 대현행 열차가 반대편 승강장에 먼저 들어오고, 그다음 자신이 탈 신도행 열차가 도착하는 순서였다.
3년 넘게 반복해온 루틴이라 서준 씨는 눈을 감고도 그 시간표를 외울 수 있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보며 열차를 기다리던 중,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반대편 승강장을 바라봤다.
거기,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반대편에 서 있던 낯익은 옷차림
서준 씨는 그날 아침 정확히 그 회색 코트를 입고 나왔다. 같은 색, 같은 재질, 심지어 왼쪽 소매의 커피 얼룩까지 똑같았다.
우연이겠거니 생각했다. 회색 코트를 입은 사람이야 흔하니까.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저녁 7시 12분이면 반대편 승강장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 항상 같은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는 척.
한번은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서준 씨가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 순간, 신도행 열차가 굉음을 내며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열차가 지나간 뒤, 반대편 승강장은 비어 있었다.
"어제 인사했잖아, 왜 무시해"
일주일쯤 지났을 때, 회사 동료 이도현 씨(가명)가 대뜸 물었다.
"어제저녁에 청람역에서 봤는데 왜 인사 씹었어?"
서준 씨는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었다.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다. 도현 씨는 분명 반대편 승강장에서 서준 씨가 손을 흔드는 걸 봤다고 했다.
"옷도 딱 그날 입은 그 회색 코트였는데?"
서준 씨는 그 코트를 회사 옷장에 걸어두고 퇴근하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은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보안실 CCTV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불안해진 서준 씨는 청람역 보안실에 요청해 도현 씨가 목격했다는 그날 저녁 반대편 승강장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 속에는 분명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뒷모습, 옆모습, 걸음걸이까지 서준 씨 자신과 완전히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 시각 사무실 출입 기록에는 서준 씨가 카드를 찍고 들어간 뒤 한 번도 나온 기록이 없었다.
보안실 직원은 화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 보더니 말했다.
"이상하네요. 이 구간 CCTV, 원래 이 시간대엔 얼굴이 잘 안 잡히는데... 이 사람은 유독 선명하네요."
스크린도어 너머, 마주친 눈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 서준 씨는 처음으로 정시에 퇴근해 청람역에 도착했다.
7시 12분. 반대편 승강장에 회색 코트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서준 씨는 스크린도어 유리 너머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남자도 그를 바라봤다.
얼굴이, 완전히 같았다.
남자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네 차례야."
그 순간 대현행 열차가 들어왔다.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승객들 사이로 남자의 모습이 가려졌다.
열차가 떠난 뒤, 반대편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도 그 역을 지나지 못한다
서준 씨는 그날 이후 청람역에서 환승하지 않는다. 두 정거장을 더 걸어서 다른 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최근, 도현 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어제도 청람역에서 너 봤어. 근데 표정이 좀... 이상하더라. 웃고 있었는데 눈은 안 웃고 있었어."
서준 씨는 그 시간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궁금하다. 반대편 승강장에 서 있던 그것이 정말 자신의 다음 차례를 예고한 것인지. 그리고 이미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아닌지.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