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의 유품, 낡은 필름카메라
박지훈 씨(가명, 31세)는 두 달 전 지방에서 홀로 지내시던 큰아버지를 여의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사진을 좋아했던 지훈 씨는 유품을 정리하던 중, 장롱 맨 위 칸에서 낡은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필름카메라 한 대가 담겨 있었다. 검은 가죽으로 감싼 금속 바디는 손에 쥐기에 묵직했고, 군데군데 가죽이 벗겨져 은빛 금속이 드러나 있었다. 셔터 버튼 주변은 오랜 세월 손이 닿아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고, 목에 거는 가죽끈은 짙은 갈색으로 색이 바래 부드럽게 늘어져 있었다. 렌즈 캡에는 가느다란 흠집들이 별자리처럼 어지럽게 나 있었다.
브랜드 로고는 오래전에 벗겨져 알아볼 수 없었다. 카메라 밑면을 살피던 지훈 씨는 손톱이나 못 같은 것으로 눌러 새긴 듯한 이니셜 두 글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니셜 바로 밑에는, 원래 있던 무언가를 억지로 긁어 지운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큰아버지보다 먼저 이 카메라를 가졌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첫 필름을 넣던 날
지훈 씨는 카메라를 그냥 두기 아까워, 흑백 필름 한 롤을 사서 끼워 넣었다. 되감기 크랭크는 뻑뻑하게 돌아갔고, 필름을 감을 때마다 다른 카메라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낮은 마찰음이 났다.
주말 동안 지훈 씨는 동네 카페, 골목길,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필름에 담았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이상하게 시야 한쪽 구석이 흐릿하게 어른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오래된 렌즈라 그러려니 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찰칵 소리 뒤로, 아주 작게 한 번 더 찰칵 소리가 메아리처럼 따라붙는 것 같았다. 지훈 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현상소에서 받아온 사진들
필름을 다 쓴 지훈 씨는 오래된 필름 전문 현상소에 인화를 맡겼다. 일주일 뒤 받아온 봉투를 열었을 때, 그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손을 멈췄다.
친구와 함께 찍은 술자리 사진. 프레임 구석, 친구의 어깨 너머로 흐릿한 사람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그날 그 자리엔 두 사람뿐이었다.
다음 사진, 그다음 사진에도 마찬가지였다. 골목길 사진 속 담벼락 옆, 카페 창가 사진 속 유리에 비친 자리. 매번 다른 곳에서, 매번 같은 흐릿한 형체가 조용히 서 있었다. 얼굴은 뭉개져 보이지 않았지만, 어깨의 각도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자세만은 사진마다 똑같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
지훈 씨는 다시 필름을 끼워 넣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셀프타이머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람이 찍힐 리 없는 상황을 만들면, 앞선 사진들이 단순한 우연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화된 사진 속에는 지훈 씨 혼자였다. 하지만 그의 등 뒤, 이전 사진들보다 확연히 가까운 거리에 그 형체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얼굴의 윤곽이 처음으로 흐릿하게나마 드러나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파여 있었다.
그날 밤, 지훈 씨는 필름을 세어보았다. 분명 24컷짜리 필름이었다. 그런데 인화된 사진은 25장이었다.
마지막 25번째 사진에는 아무 배경도 없이, 얼굴 하나만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지훈 씨는 그런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었다.
아직도 인화되고 있는 필름
지훈 씨는 카메라를 내다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뒤, 현관 앞에 놓아두었던 종량제 봉투 옆에서 카메라는 다시 나무 상자에 담긴 채 발견됐다. 마치 처음 큰아버지의 장롱에서 꺼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지훈 씨는 이제 그 카메라에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밤에 방 안에서, 낮고 뻑뻑한 필름 감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지훈 씨는 안다. 언젠가 그 필름을 다시 꺼내 현상소에 맡기게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 이번에는 자신이 찍혀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