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날의 마지막 정리
정 씨(가명, 34세)는 오 년 살던 아파트를 떠나기 하루 전, 입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후문 쪽에는 초록색 철제 헌옷수거함이 서 있었습니다. 투입구는 어른 팔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검은 구멍이었습니다.
이 수거함에는 이웃들 사이에 도는 오래된 소문이 있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옷을 넣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넣은 옷은 안쪽에서 누군가 받아 가고, 그 사람은 옷의 주인 자리를 대신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입던 옷 한 벌이 원래 주인의 집 앞에 돌아와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날 낮, 옷 보따리를 안고 수거함으로 향하던 정 씨에게 경비 아저씨가 한마디 했습니다.
"밤에는 거기 넣지 마세요. 아침에 내놓으면 됩니다."
정 씨는 웃어넘겼습니다. 다른 옷은 낮에 다 넣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버릴지 망설인 것은 오 년 동안 입은 베이지색 코트 한 벌이었고, 이삿짐을 싸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지나 있었습니다. 밤 열두 시 이십 분. 정 씨는 코트를 접어 들고 후문으로 내려갔습니다.
안쪽에서 당기는 손
단지는 조용했고,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안개 낀 공기 속에서 수거함의 철판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정 씨는 코트를 투입구에 밀어 넣었습니다.
코트 소매가 투입구에 닿았을 때 멈췄습니다.
걸린 줄 알고 한 번 더 밀었습니다. 그러자 투입구의 어둠 속에서 창백한 손이 손목까지 쑥 나와 투입구 턱을 짚더니, 소매 끝을 쥐었습니다. 얇은 천 위로 손가락 다섯 개의 윤곽이 눌렸습니다. 차갑고 축축한 손가락이었습니다.
정 씨는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놓는 순간 무언가 시작될 것 같아서 놓지 못했습니다.
잡아당기는 힘은 부드럽지만 끈질겼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코트가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옷깃이 정 씨의 손끝을 빠져나가 투입구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투입구 안쪽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스으읍.
옷 냄새를 맡는 소리였습니다. 깊게, 오래.
이어서 아주 낮은 목소리가 철판을 울렸습니다.
"……맞다."
단지 입구에서 만난 사람
정 씨는 뒤도 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날 밤은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이삿짐 트럭을 먼저 보내고 정 씨는 걸어서 단지를 나서고 있었습니다. 입구 쪽 차단기 앞에서 정 씨는 걸어 들어오는 한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베이지색 코트였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살짝 올라간 걸음걸이. 정 씨 자신이 늘 고치려다 못 고친 버릇과 똑같았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쓴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트의 맨 아래 단추가 하나 없었습니다.
몇 해 전 떨어져 잃어버린 뒤로 정 씨가 끝내 달지 못한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그 사람은 스치듯 지나가며 고개를 정 씨 쪽으로 돌렸습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이 정 씨의 눈과 닿았고, 입가가 마스크 속에서 웃는 모양으로 움직였습니다.
현관 앞에 놓인 옷
정 씨는 새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새 주소는 가족과 이삿짐센터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입주 첫날 밤 열두 시 이십 분, 현관 앞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자 아무도 없었고, 바닥에는 옷 한 벌이 단정하게 개켜져 있었습니다.
집어 드는 순간 손끝에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방금까지 누군가 입고 있었던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크기는 정 씨에게 정확히 맞았습니다.
옷 위에는 단추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코트에서 떨어져 나가 끝내 찾지 못했던, 바로 그 맨 아래 단추였습니다.
정 씨는 옷깃 안쪽 라벨을 뒤집어 보았습니다. 볼펜으로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 씨의 이름이었습니다. 정 씨의 글씨체로.
정 씨는 그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버리면 받으러 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열두 시 이십 분이면, 현관 밖에서 누군가 옷을 개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이야기는 창작된 공포 이야기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는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