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로 이사 온 봄
이○○ 씨(가명, 21세)는 올봄, 지방 소도시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서울 외곽의 작은 역 근처, 월세 28만 원짜리 반지하 원룸이었다. 계약하는 날 부동산 사장이 말했다. "햇빛이 좀 약한 대신 조용하고 좋아요."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창문은 땅과 거의 같은 높이에 나 있었다. 커튼을 걷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과 신발이 보였다. 처음엔 묘하게 불편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중요한 건 방세였고, 이○○ 씨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녀는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시작했다.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퇴근하면 샤워를 마치고 커튼을 두 겹으로 친 뒤 쓰러지듯 잠들었다.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생활이었다.
이상한 일은 이사한 지 꼭 3주가 지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들린 소곤거림
그날도 알바를 마치고 오전 7시쯤 잠들었다. 유독 피곤한 날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가 이상했다. 잠에서 깬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꿈속인 것 같기도 했다. 몸을 움직이려 했다. 신호가 닿지 않았다. 팔도, 다리도,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지 않았다.
눈도 떠지지 않았다.
그리고 들렸다.
소곤거리는 소리였다. 아주 낮게, 끊길 듯 이어지는 목소리.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장가 같기도 했다. 혼잣말 같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이었다.
창문 쪽에서 들렸다.
이○○ 씨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다.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숨은 쉬어지는데, 온몸이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다.
소곤거림은 30초쯤 이어지다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이○○ 씨는 생각했다. 그냥 꿈이었겠지. 수면이 불규칙해서 생기는 가위눌림이겠지. 별거 아닐 것이다.
그 생각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창문 너머의 것
사흘째 되던 날, 이○○ 씨는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눈을 반쯤 뜨는 데 성공했다.
천장이 보였다. 커튼 틈 사이로 낮빛이 가느다랗게 들어오고 있었다. 오후쯤 된 것 같았다.
소곤거림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방향이 더 명확했다. 창문 바로 밖, 지면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리고 보였다.
커튼 아래, 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틈새로. 무언가가 보였다.
발이었다.
맨발이었다. 창문 바로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발가락이 창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듯이.
이○○ 씨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도, 목도, 혀도 굳어 있었다. 눈물만 눈 가장자리에서 귀 쪽으로 흘러내렸다.
맨발은 1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걸음씩, 사라졌다.
소곤거림은 열흘을 넘겼다. 나흘째에는 소리가 달라졌다.
딸랑.
방울 소리였다. 아기 딸랑이를 흔드는 소리. 한 번, 두 번, 세 번.
천천히.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이○○ 씨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폐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귓속에서 터진 아기의 비명
열이틀째 되던 날 밤.
이○○ 씨는 그것을 들었다.
소곤거림도, 방울 소리도 아니었다.
귓속에서 폭발하는 것 같은, 아기의 비명이었다.
소리가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가 없었다. 귀 안쪽에서, 고막 바로 옆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고통스러운 울음이 아니었다.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무언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것 같은 비명.
5초. 10초. 15초.
끝나지 않았다.
이○○ 씨는 그 순간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몸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귀 뒤로 계속 흘러내렸다.
20초.
아기의 비명은 갑자기 끊겼다.
잘린 것처럼. 완전한, 죽음 같은 침묵.
이○○ 씨는 그날 이후 잠이 두려워졌다. 눈을 감는 것이 무서웠다. 알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현관 앞에서 30분씩 서 있다가 문을 열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당장 이사할 보증금도 없었다.
2주 동안 6킬로그램이 빠졌다.
전 세입자의 아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이○○ 씨는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가위에 눌린다. 창문 밖에 누가 서 있는 것 같다.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집주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전에 살던 아가씨... 아기 데리고 살았거든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이사를 간 건지, 어디 간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기도 같이 갔는지는... 저도 몰라요."
이○○ 씨는 전화를 끊었다.
방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귓속에서 터진 그 비명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잠이 들지 않았는데도.
전 세입자의 아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아기도 같이 갔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직 이 방에 있다면.
그 비명이 그 아기의 것이라면.
반지하를 떠난 뒤
이○○ 씨는 그달 보증금 일부를 포기하고 방을 뺐다.
새 방은 4층이었다. 창문으로는 하늘이 보였다.
가위눌림은 멈췄다. 소곤거림도, 방울 소리도, 귓속의 비명도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이사 온 지 사흘째 되던 새벽. 잠에서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이○○ 씨는 확신했다고 말했다.
잠에서 깨기 직전, 아주 짧은 순간에.
귓속 어딘가에서.
아기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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