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야근이 길었다
이○○ 씨(가명, 31세)는 서울 마포구의 한 광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마감이 겹친 그날, 사무실을 나선 것은 새벽 12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지하철 막차를 간신히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아파트까지 걸어가는 15분이 그날은 유독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 씨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구형 건물로, 복도식 구조였습니다. 각 층마다 긴 복도를 따라 세대가 늘어서 있고, 복도 양 끝에는 계단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 씨의 집은 복도 중간, 정확히 7호였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신의 층 복도에 발을 들였을 때, 이 씨는 가방 끈을 고쳐 매며 핸드폰을 확인했습니다. 새벽 12시 49분.
그리고 그 순간, 무심코 고개를 들었습니다.
복도 끝에 서 있는 것
복도 반대쪽 끝, 계단과 이어지는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웃 주민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 이 씨 자신과 똑같았습니다.
남색 후드티. 어깨에 걸쳐진 노트북 가방.
이 씨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복도 조명은 절전 모드라 희미했지만,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 형체는 이 씨와 같은 키, 같은 체형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것은, 그것이 이 씨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씨는 발이 굳어버렸습니다. 도망치고 싶은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형체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10미터. 7미터. 5미터.
그것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똑같은 얼굴
얼굴이 이 씨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이 없었습니다. 눈도, 입도, 코도 이 씨와 같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진에서 잘라낸 얼굴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눈동자. 이 씨를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습니다. 마치 이 씨를 통과해서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 씨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려는 순간, 옆 세대의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아이고, 이 시간에 누가야."
옆집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이 씨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복도 끝을 봤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복도 끝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형체는 사라졌고, 계단 문도 닫혀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었다
이 씨는 집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혹시 술에 취한 건가 싶어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그날 회식은 없었습니다.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이 씨는 혹시나 싶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복도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습니다.
"어제 새벽에... 그 층 CCTV에서 이상한 게 찍혔어요."
직원이 보여준 영상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 씨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내리기 3초 전, 복도 반대쪽 끝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이 씨 방향으로 걸어오다가 이 씨가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직원은 말했습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근데 이상한 게 있어요."
그 형체가 사라지기 직전 프레임을 정지시키자, 이 씨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형체의 얼굴이 아니라. 이 씨 자신의 얼굴이.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것
이 씨는 이후 그 아파트를 나왔습니다. 이사할 여건이 안 됐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이사하기 전날 밤, 짐을 싸던 중에 또 한 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데, 거울 속의 자신이 0.5초 늦게 움직였습니다.
이 씨는 그 거울을 그 자리에 놓고 이사를 나왔습니다.
지금도 이 씨는 가능한 한 복도가 긴 건물을 피해서 다닙니다. 그리고 야근 후 귀가할 때는 반드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에 복도를 먼저 살핍니다.
도플갱어를 목격한 사람은 곧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씨는 그날로부터 아직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말합니다. 그날 이후로 가끔, 자신이 걷고 있는지 걸려가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고.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