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일상이었던 그녀
박민지 씨(가명, 29세)는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였다. 야근은 익숙했다. 늦어도 자정 전에는 퇴근했고, 집으로 가는 길도 늘 같았다.
그녀가 사는 곳은 서울 외곽의 16층짜리 오피스텔이었다. 1인 가구가 대부분인 건물. 늦은 시간에도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이웃을 마주쳤다.
그날도 그랬다. 밤 11시 47분, 1층 로비. 같은 라인에 사는 60대 남자가 먼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늦으셨네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박 씨도 가볍게 인사했다. 평범한 밤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점점 이상해지는 것들
처음엔 그저 까만 그림자인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 안, 형광등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 무언가 서 있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는 순간, 박 씨는 숨을 멈췄다.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형태였다. 그것은 문에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코앞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박 씨는 본능적으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안 타세요?"
남자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통과하듯 걸어 들어갔다. 마치 거기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박 씨는 그날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계단으로 12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뒤로 일주일. 같은 일이 반복됐다.
매번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 매번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오직 박 씨에게만, 문이 열리는 순간 그 형체가 코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매번, 아주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엔 한 걸음 거리였던 것이, 사흘째에는 반걸음. 닷새째에는 거의 닿을 듯한 거리.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림자가 짙게 고여 있어서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느껴졌다.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항상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한여름인데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그리고 희미하게, 비 맞은 흙냄새 같은 것이 났다.
그것이 마주 본 순간
칠 일째 되던 밤.
박 씨는 혼자였다. 11시 53분.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띵.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거리가 없었다.
문틈이 채 다 벌어지기도 전에, 그 형체는 이미 문 바로 앞에, 박 씨의 코앞에 있었다.
얼굴이 보였다.
처음으로.
그것은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양쪽 귀 끝까지 찢어진 듯한 모양으로.
박 씨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그것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그런데 또렷하게 들렸다. 마치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것처럼.
"왜 자꾸 피해."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박 씨는 뒷걸음질 쳤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그 마지막 틈 사이로, 그것의 눈이 그녀를 끝까지 쫓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박 씨는 그날 밤으로 짐을 챙겨 친구 집으로 갔다. 며칠 뒤 그 오피스텔에서 완전히 이사했다.
나중에 관리실에서 우연히 들은 얘기로는, 그녀가 살던 라인의 입주민 중 몇몇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만 모두 "별일 아니다"라며 넘겼다고.
박 씨는 지금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직전, 숨을 참는다.
그리고 가끔, 다른 건물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그 차가운 공기와 비 맞은 흙냄새를 맡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문이 열리는 그 1초.
당신도 한 번쯤, 그 틈으로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적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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